고문 효경이 공씨 집에서 처음 나왔다
6. 後魯共王使人壞夫子講堂(후노공왕사인괴부자강당), 於壁中石函(어벽중석함), 得古文孝經二十二章(득고문효경이십이장). 載在竹牒(재재죽첩), 其長尺有二寸(기장척유이촌), 字科斗形(자과두형).
나중에(後) 노나라(魯) 공왕이(共王) 사람들로 하여금(使人) 부자의(夫子) 강당을(講堂) 헐도록(壞) 했는데, 벽 가운데(壁中) 석함에서(於石函), 고문(古文) 효경(孝經) 22 장을(二十二章) 얻었다(得).
<글이> 실린 것이(載) 죽간에(竹牒) 있었는데(在), 그(其) 길이가(長) 1척(尺有) 2촌이었고(二寸), 글자는(字) 과두(科斗) 모양이었다(形).
- 노나라 공왕(魯恭王: 본문의 ‘共王’은 ‘恭王’을 의미함)이란 역시 노나라 지역에 분봉된 한나라 황실의 사람을 가리킨다. 경제(景帝)의 제5자로서 한 무제의 동생이다.
魯三老孔子惠抱詣京師(노삼로공자혜포예경사), 獻之天子(헌지천자). 天子使金馬門待詔學士(천자사금마문대소학사), 與博士群儒(여박사군유), 從隸字寫之(종예자사지). 還子惠一通(환자혜일통), 以一通賜所幸侍中霍光(이일통사소행시중곽광), 光甚好之(광심호지), 言爲口實(언위구보).
노나라(魯) 삼로인(三老) 공자혜가(孔子惠) 가지고(抱) 경사로(京師) 가서(詣), 그것을(之) 천자에게(天子) 바쳤다(獻).
천자가(天子) 금마문(金馬門) 대조학사(待詔學士)와(, 與) 박사(博士), 여러 유학자로(羣儒) 하여금(使), 예서 글자체를(隸字) 따라(從) 그것을(之) 옮겨 적었다(寫).
자혜에게(子惠) 한 통을(一通) 돌려주고(還), 한 통을(以一通) 총애하는(所幸) 시중(侍中) 곽광에게(霍光) 주었고(賜), 곽광이(光) 그것을(之) 매우 좋아해서(甚好), 말마다(言) 구실로 삼았다(爲口實, 화젯거리).
時王公貴人(시왕공귀인), 咸神祕焉(함신비언), 比於禁方(비어금방). 天下競欲求學(천하경욕구학), 莫能得者(막능득자). 每使者至魯(매사자지노), 輒以人事請索(첩이인사청색). 或好事者(혹호사자), 募以錢帛(모이전백), 用相問遺(용상문유). 魯吏有至帝都者(노사유지제도자), 無不齎持以爲行路之資(무불재지이위행로지자). 故古文孝經(고고문효경), 初出於孔氏(초출어공자).
당시(時) 왕공과(王公) 귀인이(貴人), 모두(咸) 그것을(焉) 신비롭게 여기고(神祕), 금방에(於禁方, 함부로 남에게 가르쳐주지 않는 술법) 비유했다(比).
천하 사람이(天下) 다투어(競) 구해서(求) 배우려고 했지만(欲學), 얻을 수 있는 사람이(能得者) 없었다(莫). 항상(每) 사신이(使者) 노나라에 도착하면(至魯), 번번이(輒) 인사로(以人事, 인연을 구실 삼아) 구하기를(索) 청했다(請).
혹(或) 호사가는(好事者), 돈과 비단으로(以錢帛) <그것을> 모아서(募), 서로(相) 안부를 묻고(問) 선물을 주는(遺) 것에 썼다(用).
노나라 관리(魯吏) 중에 제국의 수도에(帝都) 이르는(至) 사람이 있으면(有者), 가져와서(齎持以) 가는 길의(行路之) 노잣돈으로(資) 삼지(爲) 않는(不) 일이 없었다(無).
그러므로(故) 고문(古文) 효경이(孝經), 처음에(初) 공씨 집에서(於孔氏) 나왔다(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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