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子曰: “牛山之木嘗美矣(우산지목상미의), 以其郊於大國也(이기교어대국야), 斧斤伐之(부근벌지), 可以爲美乎(가이위미호)?
맹자가 말하기를: “우산의(牛山之) 나무가(木) 일찍이(嘗) 아름다웠지만(美矣), 큰 나라의(於大國) 그 교외이기(其郊) 때문에(以也), 도끼로(斧斤) 그것을(之) 베었으니(伐), 아름답게(美) 될(爲) 수 있는가(可以乎)?
牛山, 齊之東南山也. 邑外謂之郊. 言牛山之木, 前此固嘗美矣, 今爲大國之郊, 伐之者衆, 故失其美耳.
우산(牛山)은, 제나라의(齊之) 동남쪽(東南) 산이다(山也). 읍(邑)의 바깥을(外之) 교라고(郊) 한다(謂). 言우산의(牛山之) 나무가(木), 이전에는(前此) 진실로(固) 일찍이(嘗) 아름다웠는데(美矣), 지금(今) 대국의(大國之) 교외가(郊) 되어(爲), 그것을 베는(伐之) 사람이(者) 많고(衆), 그러므로(故) 그 아름다움을(其美) 잃었을 뿐이다(失耳).
是其日夜之所息(시기일야지소식), 雨露之所潤(우로지소윤), 非無萌蘖之生焉(비무맹얼지생언), 牛羊又從而牧之(우양우종이목지), 是以若彼濯濯也(시이약피탁탁야).
이것은(是) 그(其) 낮과 밤이(日夜之) 기르는 것과(所息), 비와 이슬이(雨露之) 적셔주는 것이(所潤), 싹이(萌蘖之) 거기에서 나는 것이(生焉) 없음이(無) 아니라(非), 소와 양이(牛羊) 또(又) 따라서(從而) 길러지니(牧之), 이 때문에(是以) 저처럼(若彼) 나무가 없게 되었다(濯濯也).
○ 息, 生長也. 日夜之所息, 謂氣化流行未嘗間斷, 故日夜之閒, 凡物皆有所生長也. 萌, 芽也. 蘖, 芽之旁出者也. 濯濯, 光潔之貌.
식(息)은, 자라남이다(生長也). 낮과 밤이(日夜之) 기르는 것은(所息), 기화가(氣化) 유행함이(流行) 일찍이(嘗) 그치거나 끊어지지(間斷) 않고(未), 그러므로(故) 낮과 밤의(日夜之) 사이에(閒), 모든 사물이(凡物) 모두(皆) 자라는 것이(所生長) 있음(有)을 말한다(謂也). 맹(萌)은, 싹이다(芽也). 얼(蘖)은, 싹이(芽之) 곁에서(旁) 나온 것이다(出者也). 탁탁(濯濯)은, 빛나고 깨끗한(光潔之) 모습이다(貌).
人見其濯濯也(인견기탁탁야), 以爲未嘗有材焉(이위미상유재언), 此豈山之性也哉(차기산지성야재)?
사람이(人) 그(其) 나무 없는 것을(濯濯) 본다면(見也), 일찍이(嘗) 거기에(焉) 재목이 있지(有材) 않다고(未) 여길 것이님(以爲), 이것이(此) 어찌(豈) 산의(山之) 본성이겠는가(性也哉)?
材, 材木也. 言山木雖伐, 猶有萌蘖, 而牛羊又從而害之, 是以至於光潔而無草木也.
재(材)는, 재목이다(材木也). 言산의 나무가(山木) 비록(雖) 베어져도(伐), 아직(猶) 싹이 있지만(有萌蘖, 而) 오와 양이(牛羊) 또(又) 따라서(從而) 그것을 해치니(害之), 이 때문에(是以) 깨끗하고(光潔而) 초목이 없음에(於無草木) 이른다(至也).
雖存乎人者(수존호인자), 豈無仁義之心哉(기무인의지심재)? 其所以放其良心者(기소이방기양심자), 亦猶斧斤之於木也(역유부근지어목야), 旦旦而伐之(단단이벌지), 可以爲美乎(가이위미호)?
비록(雖) 사람에게(乎人) 보존된(存) 것이라도(者), 어찌(豈) 인의의(仁義之) 마음이(心) 없겠는가(無哉)? 그(其) 자기 양심을(其良心) 버리는(放) 것이(所以-者), 또한(亦) 도끼로(斧斤之) 나무에 대해서(於木) 하는 것과 같으니(猶也), 아침마다(旦旦而) 그것을 베면(伐之), 아름답게(美) 될(爲) 수 있겠는가(可以乎)?
- 其所以放其良心者: '其~者'는 '그 ~ 하는 것'으로 번역할 수 있다. '所以'는 '~을 가지고, ~하는 것'으로 직역하고, 과정, 방법, 수단, 까닭을 나타낸다.
良心者, 本然之善心, 卽所謂仁義之心也.
양심이란(良心者), 본래 그러한(本然之) 선한 마음이며(善心), 곧(卽) 이른바(所謂) 인의의(仁義之) 마음이다(心也).
其日夜之所息(기일야지소식), 平旦之氣(평단지기), 其好惡與人相近也者幾希(기호오여인상근야자기희), 則其旦晝之所爲(즉기단주지소위), 有梏亡之矣(유곡망지). 梏之反覆(곡지반복), 則其夜氣不足以存(즉기야기부족이존); 夜氣不足以存(야기부족이존), 則其違禽獸不遠矣(즉기위금수불원의). 人見其禽獸也(인견기금수야), 而以爲未嘗有才焉者(이이위미상유재언자), 是豈人之情也哉(시기인지정야재)?
그(其) 낮과 밤이(日夜之) 길러주는 것과(所息), 아침의 (平旦之) 기운이(氣), 그(其) 좋아하고 싫어함이(好惡) 남과 더불어(與人) 서로 비슷한 것이(相近也者) 거의 드물다면(幾希, 則) 그의(其) 아침과 낮의(旦晝之) 하는 것에(所爲), 그것을(之) 묶어 없앰이(梏亡) 있다(有矣). 그것을(之) 묶기를(梏) 반복하면(反覆, 則) 그(其) 밤기운이(夜氣, 밤에 쉬어 보충하는 기운) 보존하기에(以存) 부족하고(不足); 밤기운이(夜氣) 보존하기에(以存) 부족하면(不足, 則) 그가(其) 금수에서(禽獸) 벗어난(違) 것이 멀지 않다(不遠矣). 사람이(人) 그(其)가 금수인(禽獸) 것을 보면(見也, 而) 일찍이(嘗) 바탕을(才) 가지지 않은(未有焉) 사람이라(者) 여기니(以爲), 이것이(是) 어찌(豈) 사람의(人之) 실정(情, 본모습)이겠는가(也哉)?
○ 平旦之氣, 謂未與物接之時, 淸明之氣也. 好惡與人相近, 言得人心之所同然也.
평단지기(平旦之氣)는, 사물과 더불어(與物) 접하지 않은(未接之) 때의(時), 청명한(淸明之) 기운(氣)을 말한다(謂也). 좋아하고 싫어함이 남과 더불어 서로 비슷함(好惡與人相近)은, 사람 마음이(人心之) 같이 그렇다고 여기는(同然) 것(所)을 얻음을(得) 말한다(言也).
幾希, 不多也. 梏, 械也. 反覆, 展轉也. 言人之良心雖已放失, 然其日夜之間, 亦必有所生長. 故平旦未與物接, 其氣淸明之際, 良心猶必有發見者.
거의 드물다(幾希)는, 많지 않음이다(不多也). 고(梏)는, 형틀이다(械也). 반복(反覆)은, 전전함이다(展轉也). 사람의(人之) 양심이(良心) 비록(雖) 이미(已) 놓아버리고 잃었지만(放失), 그러나(然) 그(其) 낮과 밤의(日夜之) 사이에(間), 또한(亦) 반드시(必) 길러주는 것이(所生長) 있다는(有) 말이다(言). 그러므로(故) 평단에(平旦) 사물과 더불어(與物) 접하지 않아(未接), 그(其) 기운이(氣) 청명한(淸明之) 즈음에(際), 양심이(良心) 오히려(猶) 반드시(必) 발견되는(發見) 것이(者) 있다(有).
但其發見至微, 而旦晝所爲之不善, 又已隨而梏亡之, 如山木旣伐, 猶有萌蘖, 而牛羊又牧之也.
다만(但) 그(其) 발견이(發見) 지극히 미약하고(至微, 而) 아침과 낮에(旦晝) 행하는 것의(所爲之) 불선이(不善), 또(又) 이미 따르고(已隨而) 그것을(之) 묶어 없애니(梏亡), 산의 나무가(山木) 이미(旣) 잘라도, 오히려(猶) 싹이 있지만(有萌蘖, 而) 소와 양이(牛羊) 또(又) 그것을 방목함(牧之)과 같다(如也).
晝之所爲, 旣有以害其夜之所息, 又不能勝其晝之所爲, 是以展轉相害.
낮의(晝之) 하는 것이(所爲), 이미(旣) 그(其) 밤의(夜之) 기른 것을(所息) 해칠(害) 수 있고(有以), 또(又) 그(其) 낮의(晝之) 하는 것이(所爲) 이길 수 없어서(不能勝), 이 때문에(是以) 전전하여(展轉) 서로 해친다(相害).
至於夜氣之生, 日以寖薄, 而不足以存其仁義之良心, 則平旦之氣亦不能淸, 而所好惡遂與人遠矣.
밤기운이(夜氣之) 생겨남이(生), 날로(日以) 점점 약해짐에(於寖薄) 이르러서(至, 而) 그 인의의(其仁義之) 양심을(良心) 보존할(存) 수 없으면(不足以, 則) 평단의(平旦之) 기운이(氣) 또한(亦) 맑을 수 없고(不能淸, 而)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所好惡)이 마침내(遂) 사람과 더불어(與人) 멀어진다(遠矣).
故苟得其養(고구득기양), 無物不長(무물부장); 苟失其養(구실기양), 無物不消(무물불소).
그러므로(故) 진실로(苟) 그 기름을(其養) 얻으면(得), 사물이(物) 자라지 않음이(不長) 없고(無); 진실로(苟) 그 기름을(其養) 잃으면(失), 사물이(物) 소멸되지 않음이(不消) 없다(無).
○ 山木人心, 其理一也.
산과(山) 나무와(木) 사람의 마음이(人心), 그(其) 이치가(理) 같다(一也).
孔子曰: ‘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공자가 말하기를: ‘잡으면(操則) 보존되고(存), 놓으면(舍則) 없어지고(亡); 들고 남에(出入) 때가 없으며(無時), 그(其) 방향을(鄕) 아는(知) 사람이 없다(莫). 오직(惟) 마음을(心之) 말하는 것인가(謂與).’”
孔子言心, 操之則在此, 捨之則失去, 其出入, 無定時, 亦無定處如此.
공자가 말하기를(孔子言) 마음은(心), 그것을 잡으면(操之則) 여기에 있고(在此), 그것을 놓으면(捨之則) 잃어버리고(失去), 그(其) 들고 남(出入)이, 정해진 때(定時)가 없고(無), 또한(亦) 정해진 곳이(定處) 없음이(無) 이와 같다(如此).
孟子引之, 以明心之神明不測, 得失之易, 而保守之難, 不可頃刻, 失其養.
맹자가(孟子) 이것을 인용해서(引之, 以) 마음이(心之) 신명하고(神明) 헤아릴 수 없으며(不測), 얻고 잃음이(得失之) 쉽고(易, 而) 지키기가(保守之) 어려워서(難), 잠시라도(頃刻), 그 기름을(其養) 잃어서는(失) 안됨을(不可) 밝혔다(明).
學者, 當無時而不用其力, 使神淸氣定, 常如平旦之時, 則此心常存, 無適而非仁義矣.
학자는(學者), 마땅히(當) 때마다(時而) 힘쓰지 않음이(不用其力) 없어서(無), 신을 맑게 하고(使神淸) 기운을 안정되게 하여(使氣定), 항상(常) 평단의 때(平旦之時)처럼 한다면(如, 則) 이 마음이(此心) 항상 보존되고(常存), 어디를 가든(適而) 인의가 아님이(非仁義) 없다(無矣).
程子曰: ‘心豈有出入, 亦以操捨而言耳, 操之之道, 敬以直內而已.’
정자가 말하기를: ‘마음에(心) 어찌(豈) 들고 남이(出入) 있겠는가(有), 또한(亦) 잡고 놓은 것으로(以操捨而) 말했을 뿐이니(言耳), 그것을 잡는(操之之) 도는(道), 공경함으로(敬以) 안을 곧게 하는(直內) 것일 뿐이다(而已).’
○ 愚, 聞之師, 曰: ‘人理義之心, 未嘗無, 唯持守之, 卽在爾. 若於旦晝之間, 不至梏亡, 則夜氣愈淸, 夜氣淸, 則平旦未與物接之時, 湛然虛明氣象, 自可見矣.’ 孟子, 發此夜氣之說, 於學者, 極有力, 宜熟玩而深省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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