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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맹자집주(孟子集註)

[맹자집주 고자상(告子上) 6-b] 불선은 바탕의 죄가 아니다 / 성무선무부선장(호시의덕장)[性無善無不善章(好是懿德章)] / 측은지심 인개유지(惻隱之心, 人皆有之;)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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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曰: “乃若其情(내약기정), 則可以爲善矣(즉가이위선의), 乃所謂善也(내소위선야).

맹자가 말하기를(孟子曰): “그 정과(其情) 같은 것으로 말하자면(乃若, 則) 선이 될(爲善) 수 있으니(可以矣), 바로(乃) 이른바(所謂) 선이라고(善也) 했다.

  • '乃若'은 발어사로 보고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해석한다면 '~과 같은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한다. (맹자로 문리나기, 임옥균)

 

乃若, 發語辭. 情者, 性之動也. 人之情, 本但可以爲善而不可以爲惡, 則性之本善可知矣.

내약(乃若)은, 발어사다(發語辭). 정은(情者), 성의(性之) 움직임이다(動也). 사람의(人之) 정은(情), 본래(本) 다만(但) 선을 할(爲善) 수 있고(可以而) 악을 할(爲惡) 수 없으니(不可以), 그렇다면(則) 성이(性之) 본래(本) 선함을(善) 알 수 있다(可知矣).

 

若夫爲不善(약부위불선), 非才之罪也(비재지죄야).

만약(若) 저(夫) 불선이(不善) 되는(爲) 것은, 바탕의(才之) 죄가(罪) 아니다(也).

 

○ 才, 猶材質, 人之能也. 人有是性, 則有是才, 性旣善則才亦善. 人之爲不善, 乃物欲陷溺而然, 非其才之罪也.

재(才)는, 재질과 같고(猶材質), 사람의(人之) 능력이다(能也). 사람에게(人) 바른 성이(是性) 있다면(有, 則) 바른 재질이(是才) 있고(有), 성이(性) 이미(旣) 선하면(善則) 재질(才) 또한(亦) 선하다(善). 사람이(人之) 불선을(不善) 행함은(爲), 바로(乃) 물욕에(物欲) 빠져서(陷溺而) 그러하니(然), 그(其) 재질의(才之) 죄가(罪) 아니다(非也).

 

惻隱之心(측은지심), 人皆有之(인개유지); 羞惡之心(수오지심), 人皆有之(인개유지); 恭敬之心(공경지심), 人皆有之(인개유지); 是非之心(시비지심), 人皆有之(인개유지).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사람이(人) 모두(皆) 그것을 가졌고(有之); 수오지심은(羞惡之心), 사람이(人) 모두(皆) 그것을 가졌고(有之); 공경지심은(恭敬之心), 사람이(人) 모두(皆) 그것을 가졌고(有之); 시비지심은(是非之心), 사람이(人) 모두(皆) 그것을 가졌다(有之).

  • 惻隱之心, 人皆有之: '之'는 '惻隱之心'을 받는다. 원래 문장은 '人皆有惻隱之心'인데 목적어를 강조하려고 앞으로 빼고 '之'를 넣었다. '측은지심을 사람이 모두 가졌고'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맹자로 문리나기, 임옥균)

 

○ 恭者, 敬之發於外者也; 敬者, 恭之主於中者也.

공은(恭者), 공경이(敬之) 밖에(於外) 드러난(發) 것이고(者也); 경은(敬者), 공이(恭之) 마음에(於中) 주장하는(主) 것이다(者也).

 

惻隱之心, 仁也(측인지심인야); 羞惡之心, 義也(수오지심의야); 恭敬之心, 禮也(공경지심예야); 是非之心, 智也(시비지심지야). 仁義禮智(인의예지), 非由外鑠我也(비유외삭아야), 我固有之也(아고유지야), 弗思耳矣(불사이의). 故曰: ‘求則得之(구즉득지), 舍則失之(사즉실지).’ 或相倍蓰而無算者(혹상배사이무산자), 不能盡其才者也(불능진기재자야).

측은지심은(惻隱之心), 인이고(仁也); 수오지심은(羞惡之心), 의고(義也); 공경지심은(恭敬之心), 예고(禮也); 시비지심은(是非之心), 지다(智也).

인의예지는(仁義禮智), 밖으로부터(由外) 나를 녹여서 <들어오는>(鑠我) 것이 아니고(也), 내가(我) 본래(固) 그것을 가졌으니(有之也), 생각하지 않을(弗思) 뿐이다(耳矣).

그러므로 말하기를(故曰): ‘구하면(求則) 얻고(得之), 버리면(舍則) 잃는다(失之).’

혹(或) 서로(相) 다섯 배가 되어(倍而) 헤아릴 수 없는(無算) 것은(者), 그 재질을(其才) 다할 수 없는(不能盡) 것이다(者也).

 

鑠, 以火銷金之名, 自外以至內也. 算, 數也. 

삭(鑠)은, 불로(以火) 쇠를 녹이는(銷金之) 명칭이니(名), 바깥으로부터(自外) 그것으로(以) 안에 이름이다(至內也). 산(算)은, 헤아림이다(數也).

 

言四者之心人所固有, 但人自不思而求之耳, 所以善惡相去之遠, 由不思不求而不能擴充以盡其才也.

네 가지(四者之) 마음은(心) 사람이(人) 본래 가진(固有) 것이고(所), 다만(但) 사람이(人) 스스로(自) 생각하고 구하지(思而求之) 않을(不) 뿐이니(耳), 선악이(善惡) 서로의 거리가(相去之) 먼(遠) 까닭은(所以), 생각하지 않고(不思) 구하지 않아서(不求而) 확충해서(擴充以) 그 재질을(其才) 다할(盡) 수 없기(不能) 때문이란(由) 말이다(言也).

 

前篇言是四者爲仁義禮智之端, 而此不言端者, 彼欲其擴而充之, 此直因用以著其本體, 故言有不同耳.

전편에서(前篇) 이 네가지가(是四者) 인의예지를(仁義禮智) 하는(爲之) 단서라고(端) 말했는데(言, 而) 여기서(此) 단서를(端) 말하지 않은(不言) 것은(者), 저기서는(彼) 그가(其) 그것을 확충하기를(擴而充之) 바랐고(欲), 여기서는(此) 바로(直) 쓰는 것으로 말미암아서(因用以) 그 본체(其本體)를 드러냈으니(著), 그러므로(故) 말에(言) 같지 않음이(不同) 있을 뿐이다(有耳).

 

『詩』曰: ‘天生蒸民(천생증민), 有物有則(유물유칙). 民之秉夷(민지병이), 好是懿德(호시의덕).’

시(詩)에 이르기를(曰): ‘하늘이(天) 많은 백성을(蒸民) 내었고(生), 사물이 있으면(有物) 법칙이 있다(有則). 백성이(民之) 떳떳한 법칙(夷)을 잡아(秉), 이(是) 아름다운 덕을(懿德) 좋아한다(好).’

 

詩大雅「烝民」之篇. 蒸, 『詩』作烝, 衆也. 物, 事也. 則, 法也. 夷, 『詩』作彝, 常也. 懿, 美也.

시(詩) 대아(大雅) 증민편이다(烝民之篇). 증(蒸)은, 시(詩)에 증으로 되었는데(作烝), 무리다(衆也). 물은(物), 일이다(事也). 칙(則)은, 법칙이다(法也). 이(夷)는, 시에(詩) 이로 되었는데(作彝), 떳떳함이다(常也). 의(懿)는, 아름다움이다(美也).

 

孔子曰: ‘爲此詩者(위차시자), 其知道乎(기지도호)! 故有物必有則(고유물필유칙), 民之秉夷也(민지병이야), 故好是懿德(고호시의덕).’”

공자가 말하기를(孔子曰): ‘이(此) 시를 지은(詩) 사람은(者), 아마(其) 도를 알았을 것이다(知道乎)! 그러므로(故) 사물이 있으면(有物) 반드시(必) 법칙이 있고(有則), 백성이(民之) 떳떳함을 잡고(秉夷也), 그러므로(故) 이(是) 아름다운 덕을(懿德) 좋아한다(好).’”

 

○ 有物必有法: 如有耳目, 則有聰明之德; 有父子, 則有慈孝之心, 是民所秉執之常性也, 故人之情無不好此懿德者. 以此觀之, 則人性之善可見, 而公都子所問之三說, 皆不辯而自明矣.

사물이 있으면(有物) 반드시(必) 법칙이 있고(有法): 만약(如) 눈과 귀가(耳目) 있다면(有, 則) 총명의 덕이(聰明之德) 있고(有); 부자가(父子) 있다면(有, 則) 자효의(慈孝之) 마음이(心) 있으니(有), 이것이(是) 백성이(民) 잡은 것의(所秉執之) 떳떳한 본성이고(常性也), 그러므로(故) 사람의(人之) 정에(情) 이(此) 아름다운 덕(懿德)을 좋아하지 않는(不好) 것이(者) 없다(無). 이것으로(以此) 본다면(觀之, 則) 사람 본성의(人性之) 선을(善) 볼 수 있고(可見, 而) 공도자가(公都子) 물은 것의(所問之) 세 가지 설이(三說), 모두(皆) 변론하지 않아도(不辯而) 자명하다(自明矣).

 

○ 程子曰: “性卽理也, 理則堯舜至於塗人一也. 才稟於氣, 氣有淸濁, 稟其淸者爲賢, 稟其濁者爲愚. 學而知之, 則氣無淸濁, 皆可至於善而復性之本, ‘湯武身之是也.’ 孔子所言下愚不移者, 則自暴自棄之人也.”

정자가 말하기를: “성은(性) 곧(卽) 리요(理也), 리는(理則) 요순(堯舜)부터 길가는 사람에까지(至於塗人) 같다(一也). 재질이(才) 기에서(於氣) 받으니(稟), 기에는(氣) 청탁이(淸濁) 있고(有), 그 맑음을(其淸) 받은(稟) 사람이(者) 현명하게 되고(爲賢), 그 탁함을(其濁) 받은(稟) 사람이(者) 어리석게 된다(爲愚). 배워서(學而) 알면(知之, 則) 기에(氣) 맑고 탁함과(淸濁) 상관없이(無), 모두(皆) 선에(於善) 이르고(至而) 성의 본모습을(性之本) 회복할(復) 수 있다(可), ‘탕왕과 무왕의(湯武) 몸이(身之) 이것이다(是也).’ 공자가(孔子) 하우는(下愚) 옮길 수 없다(不移)고 말한(言) 것은(所者), 바로(則) 자포자기하는(自暴自棄之) 사람이다(人也).”

 

又曰: “論性不論氣, 不備; 論氣不論性, 不明, 二之則不是.”

또 말하기를: “성을 논하고(論性) 기를 논하지 않으면(不論氣), 구비되지 못하고(不備); 기를 논하고(論氣) 성을 논하지 않으면(不論性), 밝지 않고(不明), 두 가지가 간다면(二之則) 옳지 않다(不是).”

 

張子曰: “形而後有氣質之性, 善反之則天地之性存焉. 故氣質之性, 君子有弗性者焉.”

장자가 말하기를: “드러나고(形) 나서야(而後) 기질의(氣質之) 성이(性) 있고(有), 그것을(之) 잘 회복하면(善反則) 천지의(天地之) 성이(性) 거기에 있다(存焉). 그러므로(故) 기질의(氣質之) 성은(性), 군자에게는(君子) 성이 아닌(弗性) 것이(者) 있다(有焉).”

 

愚按: 程子此說才字, 與『孟子』本文小異. 蓋孟子專指其發於性者言之, 故以爲才無不善; 程子兼指其稟於氣者言之, 則人之才固有昏明强弱之不同矣, 張子所謂氣質之性是也. 二說雖殊, 各有所當, 然以事理考之, 程子爲密. 蓋氣質所稟雖有不善, 而不害性之本善; 性雖本善, 而不可以無省察矯揉之功, 學者所當深玩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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