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禽問於子貢曰: “夫子至於是邦也(부자지어시방야), 必聞其政(필문기정), 求之與(구지여)? 抑與之與(억여지여)?”
자금(진항)이 자공에게 물어 말하기를: 선생님이(夫子) 어느 나라에(於是邦) 이르시면(至也), 반드시(必) 그 정치를(其政) 듣는데(聞), 그것을(之) 구한 것인가요(求與)? 아니면(抑) 그것을(之) 받으신 건가요(與與)?
* 是邦(시방) : 是는 이, 이것을 뜻하는 지시대명사다. 여기서는 '어느', '어떤'의 뜻으로 쓰였다. 같은 용례가 위령공편 15-9 (居是邦也, 事其大夫之賢者, 友其士之仁者.)에 나온다.
* 求之與? 抑與之與 : A與 抑B與 (A인가요? 아니면 B인가요?)의 문형이다. '與'의 해석을 두고 정현은 '공共'으로, 주희는 '수授'로 풀었다.
* 이 장에 나오는 자금은 열전에는 제자로 기록하지 않았지만, 가어에는 제자로 기록했다. 혹자는 자금이 자공의 제자여서 열전에 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금은 성이 진이고, 이름이 항이다. 논어에 나오는 자금의 기사를 보면 공자 문하이면서 중심부에 들어오지 않고 주변을 맴돌던, 약간은 삐딱하고 부정적인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자공은 위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31세 연하로 재아와 더불어 언어에 능통한 제자로 꼽힌다. 자공은 논어의 실질적 주인공이다. 안회는 너무 완벽하고, 자로는 항상 조연의 역할에 머무른다. 또한, 자로를 제외하면 자공이 논어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다. ‘화식열전’에 따르면, 언어에 뛰어나 외교 관계 등 대외 협상에 능했고 늘 공자를 모시고 제후국을 주유했으며 공자의 속내를 가장 잘 아는 제자였다. 자공이 사두마차를 타고 기마행렬을 거느리며 제후국을 방문하면 가는 곳마다 왕들이 몸소 뜰까지 내려올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자공은 돈을 버는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 실질적으로 공자 교단의 재정은 자공이 부담했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자공이 없었더라면 공자 학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유지하기 어려웠다고 본다. 그런데도 공자는 자공에 대한 평가에 인색하였다. 그러면서도 결코 자공을 천대하지는 않았다. '군자불기'라는 원칙에 비추어 보면, 자공을 그릇에 불과하다고 평가한 것은 인색하지만, 어떤 그릇이냐고 물었을 때 '호련'이라는 옥그릇에 비유한 것은 충분히 인정한 것이다. 【김용옥, 논어 한글역주 1, 350-364】
○ 子禽, 姓陳, 名亢. 子貢, 姓端木, 名賜. 皆孔子弟子. 或曰: “亢, 子貢弟子.” 未知孰是. 抑, 反語辭.
子禽(자금)은, 성이 진이고, 이름은 항이다. 자공은, 성이 단목이고, 이름은 사다. 모두(皆) 공자 제자다(孔子弟子). 누군가(或) 말하길(曰): 항(亢)은, 자공의(子貢) 제자(弟子)라고 했다. 누가 옳은지(孰是) 알지 못한다(未知). 억(抑)은, 반어사다(反語辭).
子貢曰: “夫子溫, 良, 恭, 儉, 讓以得之. (자공왈 부자온량공검양이득지)
선생님(夫子)은 온화하고(溫), 어질고(良), 공손하고(恭), 검소하고(儉), 겸양하시어(讓) 그것으로써(以) 그것을(之) 얻었다(得).
* 溫良恭儉讓以得之(온화하고 선량하고 공손하고 검약하고 겸양함으로써 그것을 얻다.)에서 以(이): 원래 수단·방법·원인 등을 표시하는 전치사로서 다음에 溫良恭儉讓(온량공검양)을 가리키는 인칭 대사 之(지)가 와서 본위 목적어(本位目的語)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생략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전치사와 그 목적어가 도치된 형태가 된 것이다. 이런 성격의 以(이)는 점점 순접 관계를 표시하는 접속사 而(이)와 같은 기능을 지니게 되었다.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자신의 삶을 추구하느라고 인을 해치는 일은 없고 자신을 죽임으로써 인을 이루는 일은 있다.) <論語 衛靈公 9] <논어의 문법적 이해, 류종목>
溫, 和厚也. 良, 易直也. 恭, 莊敬也. 儉, 節制也. 讓, 謙遜也. 五者, 夫子之盛德光輝接於人者也.
온(溫)은, 온화하고 두터운(和厚) 것이다(也). 량(良)은, 간략하고(易) 곧은(直) 것이다(也). 공(恭)은, 장엄하고(莊) 공경스러운(敬) 것이다(也). 검(儉)은, 절제함(節制)이다(也). 양(讓)은, 겸양이다(謙遜也).
五者, 夫子之盛德光輝接於人者也.
다섯 가지(五者)는, 선생님의(夫子之) 성대한 덕(盛德)과 빛남(光輝)이 사람들에게(於人) 닿은 것(接者)이다(也).
夫子之求之也(부자지구지야), 其諸異乎人之求之與(기저이호인지구지여)?”
선생님이(夫子之) 그것(之)을 구하는 것은(求也), 아마도(其諸) 다른 사람이(人之)이 그것(之)을 구하는 것과(乎求) 다를 것이다(異與)?
* 夫子之求之也 : A之B也(A가 B 하는 것은), 之는 절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어조사다. '之~也'의 형식으로 전체 문장을 절로 만드는 방식으로 많이 쓰이고, 해석할 때는 '~이 ~하는 것'으로 하면 된다.
其
* 諸異乎 : 其諸A乎(아마 A일 것이다), '기其'자 만으로도 '아마도, 혹시'의 뜻을 나타낼 수 있는데 여기에 어세를 강하게 만드는 조사 諸를 붙여서 확실하게 표시했다. 문장 끝에 다시 추측을 표시하는 어조사 與를 추가해서 '其諸~與' 전체가 강한 추측을 나타내는 표현이 되었다. 제나라와 노나라의 사투리라고 한다.
其諸, 語辭也. 人, 他人也. 言夫子未嘗求之, 但其德容如是,
其諸는, 어조사다. 인(人)은, 다른 사람(他人)이다(也). 선생님은(夫子) 일찍이(嘗) 그것(之)을 구하지 않고(未求), 다만(但) 그(其) 덕의 모습(德容, 좋은 평판)이 이와 같고(如是),
故時君敬信, 自以其政就而問之耳, 非若他人必求之而後得也.
그러므로(故) 당시(時) 임금(君)이 공경하고 신뢰하여(敬信), 스스로(自) 자기의 정치(其政)로써(以) 취하여(就而) 그것을(之) 물었을 따름이니(問耳), 다른 사람이(他人) 반드시(必) 그것을(之) 구하고(求) 나서야(後而) 얻은(得) 것과 같지 않다(非若)는 말이다(言也).
聖人過化存神之妙, 未易窺測, 然卽此而觀, 則其德盛禮恭而不願乎外,
성인의(聖人) 과화존신의(過化存神之) 신묘함(妙)이, 엿보거나 헤아리기(窺測) 쉽지(易) 않지만(未, 然) 여기에(此) 나아가서(卽而) 본다면(觀, 則), 그(其) 덕이 성대하고(德盛) 예가 공손하여(禮恭而) 바깥에서(乎外) 원하지 않있음(不願)을,
亦可見矣. 學者所當潛心而勉學也.
또한(亦) 볼(見) 수(可) 있다(矣). 배우는 사람(學者)이 마땅히(當) 마음(心)을 가라앉히고(潛而) 배움에 힘써야(勉學)할 것(所)이다(也).
○ 謝氏曰: “學者觀於聖人威儀之間, 亦可以進德矣.
사씨가 말하기를: 배우는 사람(學者)이 성인(聖人)의 위의의(威儀之, 모범이 되는 행동) 사이(於間)에서 보면(觀), 또한(亦) 덕에 나아갈(進德) 수(可以) 있다(矣).
若子貢亦可謂善觀聖人矣, 亦可謂善言德行矣.
자공 같다면(若子貢) 또한(亦) 성인(聖人)을 잘 보았다(善觀)고 말할(謂) 수(可) 있고(矣), 또한(亦) 덕행(德行)을 잘 말했다고(善言) 말할(謂) 수(可) 있다(矣).
今去聖人千五百年, 以此五者想見其形容, 尙能使人興起, 而況於親炙之者乎?”
지금(今) 성인(聖人)과 거리(去)가 1,500 년이지만(千五百年), 이(此) 다섯 가지(五者)로써(以) 그(其) 모습(形容)을 상상해서(想) 보면(見),
尙能使人興起, 而況於親炙之者乎?”
아직도(尙) 사람이(人) 흥기(興起)하도록(使) 할 수(能) 있는데, 하물며(而況) 직접 가르침 받음의(親炙之) 사람에 대해서는(於者) 어떠하겠는가(乎)?
張敬夫曰: “夫子至是邦必聞其政, 而未有能委國而授之以政者."
장경부가 말하길: 선생님이(夫子) 어느 나라(是邦)에 이르면(至) 반드시(必) 그 정치를(其政) 들었지만(聞, 而), 나라를 맡기고(能委國而) 정치로써(以政) 그에게(之) 준 사람이(授者) 있지 않다(未有).
蓋見聖人之儀刑而樂告之者, 秉彝好德之良心也, 而私欲害之, 是以終不能用耳.”
대체로(蓋) 성인의(聖人之) 거동과 모범(儀刑)을 보고(見而) 그에게(之) 고하기(告)를 즐기는 것은(樂者), 떳떳함(彝)을 쥐고(秉) 덕을 좋아하는(好德之) 양심이지만(良心也),
而私欲害之, 是以終不能用耳
그러나(而) 사욕이(私欲) 그것(之)을 해치고(害), 이 때문에(是以) 끝내(終) 등용(用)할 수(能) 없었을 따름이다(不耳).
○ 『仲尼弟子列傳』曰: “子貢一出, 存魯亂齊, 破吳, 彊晉而霸越. 子貢一使, 使勢相破, 十年之中, 五國各有變.”
중니제자열전에 이르기를: 자공이 한 번 나서면, 노나라를 보존하고 제나라를 혼란스럽게 했고, 오나라가 망가지고, 진나라가 강성해지고, 월나라가 패자가 되었다. 자공이 한 번 사신으로 가면, 세력이 서로 깨지도록 해서, 십 년 안에, 다섯 나라에 변고가 있었다.
○ 『貨殖列傳』曰: “子贛旣學於仲尼, 退而仕於衛, 廢著鬻財於曹ㆍ魯之閒, 七十子之徒, 賜最爲饒益.
화식열전에 이르기를: 자공이 이미 중니에게서 배우고, 물러나서 위나라에서 벼슬했고, 조나라와 노나라 사이에 많은 물건을 쌓고 팔아, 70 명의 제자 중에서, 자공이 가장 부자가 되었다.
原憲不厭糟穅, 匿於窮巷. 子貢結駟連騎, 束帛之幣以聘享諸侯, 所至, 國君無不分庭與之抗禮. 夫使孔子名布揚於天下者, 子貢先後之也. 此所謂得埶而益彰者乎.”
원헌은 지게미와 겨도 배불리 못 먹고, 궁벽한 거리에 숨었다. 자공이 마차와 기병을 거느리고, 비단 폐백으로 제후와 드나들었는데, 이르는 곳마다, 국군이 뜰에 내려와 함께 예를 행하지 않는 적이 없다. 공자의 이름을 천하에 널리 알린 것은, 자공이 앞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세를 얻어 명성이 더욱 드날리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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