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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맹자집주(孟子集註)

[맹자집주 등문공하(滕文公下) 5] 송나라는 작은 나라입니다 / 송소국장(장행왕정장)[宋小國章(將行王政章)]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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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라의 왕도정치

萬章問曰(만장문왈): “宋, 小國也(송소국야). 今將行王政(금장행왕정), 齊ㆍ楚惡而伐之(제초오이벌지), 則如之何(즉여지하)?”

만장이(萬章) 물어 말하기를(問曰): “송나라는(宋), 작은(小) 나라다(國也). 지금(今) 장차(將) 왕정(王政)을 행하려는데(行), 제나라와 초나라가(齊楚) 미워하고(惡而) 그것(之)을 정벌한다면(伐, 則) 어찌합니까(如之何)?”

 

○ 萬章, 孟子弟子. 宋王偃嘗滅滕伐薛, 敗齊ㆍ楚ㆍ魏之兵, 欲霸天下, 疑卽此時也.

만장은(萬章), 맹자(孟子) 제자다(弟子). 송나라(宋) 왕(王) 언(偃) 일찍이(嘗) 등나라를 멸하고(滅滕) 설나라를 정벌하고(伐薛), 제나라, 초나라, 위나라의(齊楚魏之) 군대를(兵) 물리쳐서(敗), 천하를(天下) 제패하고자(欲霸) 한 것이, 곧(卽) 이때(此時)인 듯하다(疑也).

 

孟子曰: “湯居亳(탕거박), 與葛爲鄰(여갈위린), 葛伯放而不祀(갈백방이불사). 湯使人問之曰(탕사인문지왈): ‘何爲不祀(하위불사)?’ 曰: ‘無以供犠牲也(무이공희생야).’ 湯使遺之牛羊(탕사유지우양). 葛伯食之(갈백식지), 又不以祀(우불이사).

맹자가 말하기를: “탕임금이(湯) 박에(亳) 거처할(居) 때, 갈과 더불어(與葛) 이웃이 되엇는데(爲鄰), 갈백이(葛伯) 방종하고(放而) 제사지내지 않았다(不祀). 탕임금이(湯) 사람을 시켜(使人) 그에게(之) 물어 말하기를(曰): ‘무엇 때문에(何爲 제사지내지 않는가(不祀)?’ 말하기를: ‘희생(犠牲)을 제공할(供) 수 없다(無以也).’ 탕임금이(湯) <사람을> 시켜(使) 그에게(之) 소와 양을(牛羊) 보내 주었다(遺). 갈백이(葛伯) 그것을 먹고(食之), 또(又) 그것으로(以) 제사지내지 않았다(祀).

  • 無以供犠牲也: '無'가 '以'와 함께 쓰이면 다음에 동사나 형용사가 온다. '以' 다음에는 '何'가 생략된 것으로 '무엇을 가지고 (제공해야 하는데) 제공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以'가 없으면 다음에 명사가 온다. 
  • 湯使遺之牛羊: '使' 다음에 '人'이 생략되었다. '遺(보내주다)'는 '與' 계통의 동사로 '누구에게 무엇을 주다'라고 쓴다. 

○ 葛, 國名. 伯, 爵也. 放而不祀, 放縱無道, 不祀先祖也.

갈(葛)은, 나라이름이다(國名). 백(伯)은, 작위다(爵也). 방탕하고(放而) 제사지내지 않음(不祀)은, 방종하고(放縱) 무도하여(無道), 선조에게(先祖) 제사지내지 않음(不祀)이다(也).

 

湯又使人問之曰(탕우사인문지왈): ‘何爲不祀(하위불사)?’ 曰: ‘無以供粢盛也(무이공자성야).’ 湯使亳衆往爲之耕(탕사박중왕위지경), 老弱饋食(노약궤식). 葛伯率其民(갈백솔기민), 要其有酒食黍稻者奪之(요기유주식서도자탈지), 不授者殺之(불수자살지). 有童子以黍肉餉(유동자이사육향), 殺而奪之(살이탈지).

탕임금이(湯) 또(又) 사람을 시켜(使人) 그에게(之) 물어 말하기를(曰): ‘무엇 때문에(何爲) 제사하지 않는가(不祀)?’ 말하기를: ‘제사에 쓸 음식(粢盛)을 바칠(供) 수 없다(無以也).’ 탕임금이(湯) 박땅 사람들(亳衆)로 하여금(使) 가서(往) 그들을 위해(爲之) 농사 짓게(耕) 하고, 노약자에게(老弱) 음식을() 보냈다(饋). 갈백이(葛伯) 자기(其) 백성을(民) 이끌고(率), 그(其) 술(酒)과 밥(食), 기장밥(黍) 쌀밥(稻)을 가진(有) 사람을(者) <길목을 지켜> 맞이하고(要) 그것을 빼앗고(奪之), 주지 않는(不授) 사람(者)은 죽였다(殺之). 어린아이가(童子) 있어(有) 기장밥과 고기로(以黍肉) <음식을> 보냈는데(餉), 죽이고(殺而) 그것을 빼앗았다(奪之).

  • 往爲之耕: '爲之'는 뒤에 나오는 단어가 명사인지 동사인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명사'면 '之'가 명사를 꾸미는 '其'와 같ㅏ게 보고 '그 ~을 하다'라고 해석한다. '동사'가 오면 '그를 위하여 ~하다'라고 해석한다. 

 

○ 亳衆, 湯之民. 其民, 葛民也. 授, 與也. 餉, 亦饋也.

박중(亳衆)은, 탕임금의(湯之) 백성이다(民). 기민(其民)은, 갈의 백성이다(葛民也). 수(授)는, 줌이다(與也). 향(餉)은, 또한(亦) 보내줌이다(饋也).

 

『書』曰: ‘葛伯仇餉(갈백구향).’ 此之謂也(차지위야).

서(書)에 이르기를(曰): ‘갈백이(葛伯) 음식 보낸 사람을(餉) 원수로 삼았다(仇).’ 이것을(此之) 말한다(謂也).

 

『書』「商書仲虺」之誥也. 仇餉, 言與餉者爲仇也.

서(書)에 상서(商書) 중훼지고다(仲虺之誥也). 구향(仇餉)은, 음식(餉) 준(與) 사람(者)이 원수가 되었다(爲仇)는 말이다(言也).

 

爲其殺是童子而征之, 四海之內皆曰: ‘非富天下也, 爲匹夫匹婦復讎也.’

그가(其) 이(是) 어린아이를(童子) 죽인 것(殺) 때문에(而) 그들을 정벌했으니(征之), 사해의(四海之) 안(內)이 모두(皆) 말하기를(曰): ‘천하를(天下) 부유하게 함(富)이 아니라(也), 필부필부(匹夫匹婦)를 위하여(爲) 복수했다(復讎也).’

 

○ 非富天下, 言湯之心, 非以天下爲富而欲得之也.

천하를(天下) 부유하게 함(富)이 아님은(非), 탕임금의(湯之) 마음이(心), 천하로써(以天下) 부로 여기고(爲富而) 그것(之)을 얻고자(得) 함(欲)이 아니라는(非) 말이다(言也).

 

湯始征, 自葛載, 十一征而無敵於天下. 東面而征, 西夷怨; 南面而征, 北狄怨, 曰: ‘奚爲後我?’ 民之望之, 若大旱之望雨也. 歸市者弗止, 芸者不變, 誅其君, 弔其民, 如時雨降. 民大悅.

탕임금이(湯) 정벌을(征) 시작하기를(始), 갈나라로부터(自葛) 시작하여(載), 11 번(十一) 정벌하고(征而) 천하에(於天下) 대적할 사람이(敵) 없었다(無). 동으로(東) 향하여(面而) 정벌하면(征), 서이가(西夷) 원망하고(怨); 남으로(南) 향하여(面而) 정벌하면(征), 북적이(北狄) 원망하여(怨), 말하기를: ‘어찌(奚) 우리를(我) 나중으로 삼는가(爲後)?’ 백성이(民之) 그를(之) 바라기를(望), 마치(若) 큰 가뭄의(大旱之) 비(雨)를 바라듯이(望) 했다(也). 시장에(市) 돌아가는(歸) 사람이(者) 그치지 않고(弗止), 김매는 사람이(芸者) 변하지 않고(不變), 그 임금을(其君) 죽이고(誅), 그 백성을(其民) 위로한(弔) 것이, 때 맞춰(時) 비가(雨) 내리는(降) 듯하여(如). 백성이(民) 크게(大) 기뻐했다(悅).

  • 大旱之望雨: 도치 구문이다. 원래 문장은 '望雨於大旱'인데 大旱를 앞으로 빼면서 於를 생략했다. 도치를 나타내기 위해 '之'를 넣었다. 
  • 奚爲後我: '奚'를 의문대명사로 보고 '무엇 때문에(奚爲) 우리를(我) 뒤로 하는가(後)'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載, 亦始也. 十一征, 所征十一國也. 餘己見前篇.

재(載)는, 또한(亦) 시작이다(始也). 열한 번(十一) 정벌함(征)은, 열한 나라를(十一國) 정벌한(征) 것이다(所也). 나머지는(餘) 이미(己) 전편에(前篇) 보인다(見).

 

『書』曰: ‘徯我后(혜아후), 后來其無罰(후래기무벌).’ 有攸不臣(유유불위신), 東征(동정), 綏厥士女(수궐사녀), 匪厥玄黃(비궐현황), 紹我周王見休(소아주왕견휴), 惟臣附于大邑周(유신부우대읍주). 其君子實玄黃于匪以迎其君子(기군자실현황우비이영기군자), 其小人簞食壺漿以迎其小人(기소인단사호장이영기소인), 救民於水火之中(구민어수화지중), 取其殘而已矣(취기잔이이의).

서(書)에 이르기를: ‘우리(我) 임금(后)을 기다렸는데(徯), 임금이 오시니(后來) 아마도(其) 벌이 없다(無罰).’ 유나라(攸) 신하 노릇(臣) 하지 않아서(爲), 동으로 정벌하여(東征), 그(厥) 남녀를(士女) 편안하게(綏) 하고, 그(厥) 노랗고(玄) 검은(黃) 비단을 광주리에 담아(匪), 우리(我) 주왕을(周王) 뵙고(紹) 아름다움(休)을 보고(見), 대읍(大邑) 주에(周) 의지하여(附) 신하 노릇(惟臣) 했다. 그(其) 군자는(君子) 광주리에(于匪) 검은 비단과 노란 비단을(玄黃) 담아 그것으로(以) 그 군자를(其君子) 맞이하고(迎), 그(其) 소인은(小人) 단사호장으로(簞食壺漿以) 그 소인을(其小人) 맞이하고(迎), 물과 불(水火之) 가운데서(中) 백성을 구제하여(救民), 그(其) 잔인한 자를(殘) 취했을(取) 뿐이다(而已矣).

 

○ 按『周書』「武成篇」載武王之言, 孟子約其文如此. 然其辭時與今『書』文不類, 今姑依此文解之.

주서(周書) 무성편(武成篇)을 보면(按) 무왕의(武王之) 말이(言) 실렸는데(載), 맹자가(孟子) 그 글을(其文) 이처럼(如此) 요약했다(約). 그러나(然) 그(其) 말이(辭) 때로(時) 지금(今)의 서와 더불어(與書) 글이(文) 비슷하지 않으니(不類), 지금(今) 우선(姑) 이 글에(此文) 의지해서(依) 그것을 풀었다(解之). 

 

有所不爲臣, 謂助紂爲惡, 而不爲周臣者. 匪, 與篚同. 玄黃, 幣也. 紹, 繼也, 猶言事也. 言其士女以篚盛玄黃之幣, 迎武王而事之也. 

신하 노릇 하지 않는(不爲臣) 것(所)이 있음은(有), 주왕을 돕고(助紂) 악행을 하여(爲惡, 而) 주나라의(周) 신하(臣) 되지 않는(不爲) 사람(者)을 말한다(謂). 비(匪)는, 비와 더불어(與篚) 같다(同). 현황(玄黃)은, 비단이다(幣也). 소(紹)는, 이음으로(繼也), 섬긴다(事)는 말과 같다(猶言也). 그(其) 사녀가(士女) 검고 누런(玄黃之) 비단(幣)을 담아와서(以篚盛), 무왕을 맞이하고(迎武王而) 그를 섬김을(事之) 말한다(言也). 

 

人而曰周王’, 商書所謂我后也美也言武王能順天休命而事之者皆見休也臣附歸服也.

상나라(商) 사람인데도(人而) 우리(我) 주왕(周王)이라고 말한(曰) 것은, 상서(商書)의 이른바(所謂) 우리 임금(我后)과 같다(猶也). 휴(休)는, 아름다움이고(美也), 言무왕이(武王) 하늘을 따르고(順天) 명을 아름답게(休命) 할 수 있어(能, 而) 그랄 섬기는(事之) 사람이(者) 모두(皆) 아름다움을 보았다(見休也). 신부(臣附)는, 돌아와 복종함이다(歸服也). 

 

孟子又釋其意, 言商人聞周師之來, 各以其類相迎者, 以武王能捄民於水火之中, 取其殘民者誅之, 而不爲暴虐耳. 

맹자가(孟子) 또(又) 그 뜻을(其意) 풀어(釋), 言상나라 사람이(商人) 주나라(周) 군대가(師之) 옴(來)을 듣고도(聞), 각자(各) 그(其) 류로써(以類) 서로(相) 맞이한(迎) 것은(者), 무왕이(武王) 물과 불의 가운데서(於水火之中) 백성을(民) 뽑아낼(捄) 수 있기(能) 때문이고(以), 그(其) 백성을(民) 잔악하게 하는(殘) 자를(者) 취하여(取) 그를 죽이고(誅之, 而) 포악하게(暴虐) 하지 않았을(不爲) 뿐이다(耳). 

 

君子, 謂在位之人. 小人, 謂細民也.

군자(君子)는, 지위에(位) 있는(在之) 사람(人)을 말한다(謂). 소인(小人)은, 세민을 말한다(謂細民也).

 

「太誓」曰: ‘我武惟揚(아무유양), 侵于之疆(침우지강), 則取于殘(즉취우잔), 殺伐用張(살벌용장), 于湯有光(우양유광).’

태서(太誓)에 이르기를(曰): ‘내(我) 무력을(武) 오직(惟) 드날려(揚), 그(之) 국경에(疆) 침입하면(, 則) 잔인한 사람을(于殘) 취하여(取), 죽이고 벌함으로(殺伐用) 펼쳐지니(張), 탕임금보다(于湯) 빛남이 있다(有光).’

  • 侵于之疆에서 '之'는 '其'와 같고, 殺伐用張에서 '用'은 '以'와 같다. 于湯有光에서 '于'는 '~보다'로 비교급을 나타낸다. 

 

「太誓」, 「周書」也. 今『書』文亦小異. 言武王威武奮揚, 侵彼紂之疆界, 取其殘賊, 而殺伐之功因以張大, 比於湯之伐桀又有光焉, 引此以證上文取其殘之義.

 

不行王政云爾(불행왕정운이), 苟行王政(구행왕정), 四海之內皆擧首而望之(사해지내개거수이망지), 欲以爲君(욕이위군). 齊ㆍ楚雖大(제초수대), 何畏焉(하외언)?”

왕정을(王政) 행하지 않았다고(不行) 말할(云) 뿐이고(爾), 진실로(苟) 왕정을(王政) 행해서(行), 사해의(四海之) 안이(內) 모두(皆) 머리를 들어(擧首而) 그를 바라보고(望之), 그로써(以) 임금(君) 삼기를(爲) 바랐다(欲). 제나라와 초나라가(齊楚) 비록(雖) 크지만(大), 어찌(何) 두려워하겠는가(畏焉)?”

 

宋實不能行王政, 後果爲齊所滅, 王偃走死.

송나라가(宋) 실제로(實) 왕정을(王政) 행할 수 없었고(不能行), 나중에(後) 과연(果) 제나라가(齊) 멸망시킨 것(所滅)이 되어(爲), 왕(王) 언이(偃) 패주하여(走) 죽었다(死).

 

○ 尹氏曰: “爲國者能自治而得民心, 則天下皆將歸往之, 恨其征伐之不早也. 尙何强國之足畏哉? 

윤씨가 말하기를: “나라를 다스리는(爲國) 사람이(者) 스스로를 다스리고(自治而) 민심을(民心) 얻을(得) 수 있다면(能, 則) 천하가(天下) 모두(皆) 장차(將) 그에게(之) 돌아가(歸往), 그(其) 정벌이(征伐之) 빠르지 않음을(不早) 원망한다(恨也). 오히려(尙) 어찌(何) 강한 나라를(强國之) 두려워(畏) 하겟는가(足哉)? 

 

苟不自治, 而以强弱之勢言之, 是可畏而已矣.”

만약(苟) 자기를(自) 다스리지(治) 못하고(不, 而) 강약의 세로써(以强弱之勢) 그것을 말하면(言之), 두려워할 만한(可畏) 것일(是) 뿐이다(而已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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