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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논어집주(論語集註)

[논어집주 학이(學而) 1-7] 현현역색 사부모능갈기력(賢賢易色 事父母能竭其力) / 어진 사람을 존경하고 부모를 모시는 데 힘을 다하면 배운 사람이다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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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夏曰: “賢賢易色(현현역색), 事父母能竭其力(사부모능갈기력)

자하가 말하기를: 어진이(賢)를 어질게 대하여(賢)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色)을 바꿔서 하고(易), 부모를 모심(事父母)에 그 힘(其力)을 다할(竭) 수(能) 있으며,

 

* 賢賢易色(현현이색): 뒤의 賢(현)은 '어질다'라는 뜻의 형용사가 '현인'이라는 뜻의 명사로 전용된 것이고 앞의 賢(현)은 '현명하게 여기다, 소중하게 여기다'라는 뜻의 의동사(意動詞)로 전용된 것이다. (논어의 문법적 이해, 류종목)

 

* 賢賢易色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고주> '賢賢'을 '현명한 사람을 현명하게 대한다'라고 해석하고, '易'을 '바꾼다'라고 해석하면, '현인을 현인으로 대접하는 마음을 여자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꿀 수 있다'라고 해석한다. 즉, '색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현인을 대접해라'라는 말이다.

<육조> '易色'을 '안색을 바꾼다'라고 해석한다. 즉, 현인을 대접할 때는 평소 안색과 다르게 공경하는 장중한 모습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주> '賢賢'과 '易色'을 분리시켜 해석한다. 즉, 현인을 대접하고, 여색을 멀리하라고 해석한다.
주자는 대체로 고주와 비슷하게 해석한다. 그러나 호색하는 마음을 현현하는 마음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해서 송유의 도덕주의적 색채가 나타난다. 【김용옥, 논어 한글 역주1, 317-334】

 

子夏, 孔子弟子, 姓卜, 名商. 賢人之賢, 而易其好色之心, 好善有誠也.

자하는, 공자 제자로, 성은 복이고, 이름은 상이다. 남의 어짊을(人之賢) 어질게 대하고(賢,而), 그 색을 좋아하는(其好色之) 마음(心)을 바꿔서 함(易)은, 선을 좋아하는 데(好善) 정성(誠)이 있는 것이다(有也).

 

* 자하의 성은 복(卜)이고, 이름은 상(商)이다. 진나라 온(溫)국 사람이고도 하고, 위(魏)나라 혹은 위(衛)나라 사람이라는 설도 있다. 노나라 사람이 아니며, 공문십철 중 자유와 함께 문학에 뛰어난 사람으로 꼽는다. 공자가 죽은 후 자하는 서하에 학단을 만들어 제자들을 가르쳤고, 이들이 위문후의 조력자가 되어 국세를 크게 떨치는데 도움을 주었다.

 

事君能致其身(사군능치기신), 與朋友交言而有信(여붕우교언이유신).  

임금을 섬기는데(事君) 자기 몸(其身)을 바칠(致) 수(能) 있고, 벗과 더불어(與朋友) 교제하는데(交) 말을 하면(言而) 믿음이 있어야 한다(有信).

 

致, 猶委也. 委致其身, 謂不有其身也.

致는, 맡김(委)과 같다(也). 그 몸을(其身) 내어주어 맡김은(委致), 자기 몸(其身)을 갖지(有) 않음(不)을 말한다(謂也).

 

雖曰未學((수왈미학), 吾必謂之學矣(오필위지학의)).”

비록(雖) 배우지 못했다고(未學) 말하더라도(曰), 나는(吾) 반드시(必) 그(之)를 배웠다고(學) 말할 것이다(謂矣).

 

四者皆人倫之大者, 而行之必盡其誠, 學求如是而已. 

네 가지(四者)는 모두(皆) 인륜의(人倫之) 큰 것이고(大者而), 행함이(行之) 반드시(必) 그 정성(其誠)을 다해야 하고(盡), 배움은(學) 이와 같기를(如是) 바랄 뿐이다(求而已). 

 

故子夏言有能如是之人, 苟非生質之美, 必其務學之至. 

그러므로(故) 자하는(子夏) 이와 같이(如是) 할 수 있는(能之) 사람(人)이 있다면(有), 정말로(苟) 타고난 자질의(生質之) 아름다움(美)이 아니라면(非), 반드시(必) 그가(其) 배움의 지극함(學之至)에 힘썼다는(務) 말이다(言).

 

雖或以爲未嘗爲學, 我必謂之已學也.

비록(雖) 혹시라도(或) 일찍이(嘗) 배우지(爲學) 않았다고(未) 여겨지더라도(以爲), 나는(我) 반드시(必) 그를(之) 이미 공부했다고(已學) 말할 것이다(也).

 

○ 游氏曰: “三代之學, 皆所以明人倫也. 能是四者, 則於人倫厚矣. 

유씨가 말하기를: <하, 은, 주> 삼대의(三代之) 학문이(學), 모두(皆) 인륜을 밝히는(明人倫) 것이다(所以也). 이(是) 네 가지를(四者) 잘하면(能則) 인륜에 있어서(於人倫) 두터울 것이다(厚矣). 

 

學之爲道, 何以加此. 子夏以文學名, 而其言如此, 則古人之所謂學者可知矣. 

배움의(學之) 방법 됨이(爲道), 여기에(此) 무엇을(何以) 더할 것인가(加). 자하가(子夏) 문학으로(以文學) 이름을 날렸는데도(名而) 그 말이(其言) 이와 같았다면(如此), 옛사람의(古人之) 이른바(所謂) 배움이란 것(學者)을 알(知) 수 있다(可矣). 

 

故「學而」一篇, 大抵皆在於務本.”

그러므로(故) 학이 제1편은, 대체로 보아(大抵) 모두(皆) 근본에 힘씀에(於務本) 있다(在).

 

吳氏曰: “子夏之言, 其意善矣. 然辭氣之間, 抑揚太過, 其流之弊, 將或至於廢學. 

오씨가 말하기를: 자하의(子夏之) 말이(言), 그 뜻이(其意) 좋다(善矣). 그러나(然) 말 기운의(辭氣之) 사이에(間), 억양(抑揚)이 너무 지나쳐(太過), 그(其) 흐름의(流之) 폐단이(弊), 장차(將) 혹시라도(或) 학문을 없애는 데(於廢學) 이를 수 있다(至). 

 

必若上章夫子之言, 然後爲無弊也.”

반드시(必) 윗장(上章) 부자의 말(夫子之言)과 같고(若) 나서야(然後), 폐단이 없게(無弊) 된다(爲也).

 

○ 桓玄詣殷荊州, 殷在妾房晝眠, 左右辭不之通. 桓後言及此事, 殷雲: “初不眠. 縱有此, 豈不以‘賢賢易色’也?” 『世說新語』

환현이 형주의 은중감을 보러 가니, 은중감이 첩의 방에서 낮잠을 자며, 좌우를 물려서 통하지 않았다. 환이 나중에 이 일을 말하니, 은이 말하기를: 처음엔 자지 않았고, 설령 이런 일이라면, 어찌 현현역색하지 않을까? <세설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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