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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백가(諸子百家)/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 왕필주)

[노자 도덕경 왕필(王弼)주 상편] (제 1장) 도를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 /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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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道可道(도가도), 非常道(비상도). 名可名(명가명), 非常名(비상명).

도를(道) <도라고> 말할(道) 수 있으면(可), 치우치지 않은 / 늘 그러한(常) 도가(道) 아니다(非). 이름을(名) <이름으로> 부를(名) 수 있으면(可), 치우치지 않은 / 늘 그러한(常) 이름이(名) 아니다(非).

 

* 이 구절은 《莊子》 〈天道〉, 《淮南子》 〈道應訓〉에서 桓公과 輪扁의 이야기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淮南子》에서 수레바퀴를 깎는 匠人 윤편이 齊 桓公에게 '聖人이 남긴 글[書]은 결국 실질적인 의미[實]는 사라지고 껍데기[糟粕]만 남은 것이고, 道는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다'라고 하면서 이 구절을 인용한다. 《장자》와 《회남자》의 해석은 《老子》의 이 첫 구절이 현대학자들이 선호하는 언어와 실재의 불일치라는 철학적 주제가 아니라, 道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方法知(the knowing-how)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즉 道는 문자로 전달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초기의 주석이다. (동양고전 종합 DB)

 

* 우주의 본질을 말하는 희랍인들의 아르케archē와 우리 동방의 도道는 좀 성격이 다르다. 희랍인들은 모든 변화를 야기시키는, 변화의 궁극에 있는 불변의 실체, 그 존재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철학적 물음이 출발했다. 동방 사람들은 궁극적 실체성이나 원초성(아르케에는 “시작starting point"이라는 뜻이 있다)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길"이라고 하는 천지대자연의 운행의 규칙성의 도덕적 의미를 물었다.

 

* "상도常道"에서 "상常"은 도를 수식하는 형용사이다. 문자 그대로 말하면 "상스러운 도道"라는 뜻이다. 그런데 "상常"은 시간을 초월해 있다든가, "불변"(변하지 않는다)이라든가, "영원永遠eternity"(시간에 종속되지 않는다)의 뜻을 전혀 내포하지 않는다. 항상이란 변화의 항상스러운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변화의 규칙성regularity이나 지속성 durability, 혹은 변화하는 물체의 아이덴티티의 지속을 나타내는 말이다. 

 

可道之道, 可名之名, 指事造形, 非其常也. 故不可道, 不可名也.

말할(道) 수 있는(可之) 도(道)와, 부를(名) 수 있는(可之) 이름(名)은, 사물을 가리키고(指事) 형태를 만든 것이니(造形), 그것은(其) 늘 그러한 것이(常) 아니다(非也). 그러므로(故) 도라고 할(道) 수 없고(不可), 이름이라고 할(名) 수 없다(不可也).

 

* 《列子》 〈天瑞〉의 張湛 注에 “죽간이나 비단에 쓰거나 쇠붙이나 돌에 새겨서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이 可道의 道이다. [夫著於竹帛 鏤於金石 可傳於人者 可道之道也]”라고 하였다.

 

* 指事’란 글자를 통해 표현된 구체적인 사물이나 사태를 가리킨다. ‘造形’은 《周易》 〈繫辭傳 上〉 韓康白의 注에서 ‘象’은 ‘日月星辰’에 해당하고 ‘形’은 ‘山川草木’에 해당한다고 했다. 또 ‘造形’은 본래 《莊子》 〈徐无鬼〉에 나오는데, ‘形’은 외형적인 차원의 의미이고 ‘造形’은 더욱 형태화 된 행동이나 규범의 뜻으로 사용했다.

 

1.2 無名天地之始(무명천지지시), 有名萬物之母(유명만물지모).

이름 없음(無名)은 천지(만물)의(天地之) 시작이고(始), 이름 있음(有名)은 만물의(萬物之) 어머니다(母).

 

凡有皆於無始, 故「未形」, 「無名」之時則為萬物之始, 及其「有形」, 「有名」之時, 則長之育之, 亭之毒之, 為其母也. 

모든(凡) 있음(有)은 모두(皆) 없음에서(於無) 시작하고(始), 그러므로(故) 아직 드러나지 않아서(未形), 이름이 없는(無名之) 때라면(時則) 만물의(萬物之) 시작(始)이 되고(為), 그(其) 드러남이 있음에(有形) 이르러서(及), 이름이 있는(有名之) 때라면(時, 則) 그것을 자라게 하고(長之) 그것을 기르고(育之), 그것을 형통하게(亭之) 하고 그것을 성장하게(毒之) 하니, 그(其) 어머니(母)가 된다(為也). 

 

* 毒(독): 해치다, 근심하다, 괴로워하다, 미워하다, 원망하다, 한탄하다, 다스리다, 기르다.

 

言道以無形無名始成萬物, 以始以成而不知其所以, 玄之又玄也.

도(道)는 드러나지 않음과(無形) 이름 없음으로써(以無名) 만물을(萬物) 시작하게(始) 하고 이루었으며(成),  그것으로(以, 드러나지 않음과 이름 없음) <만물이> 시작되고(始) 그것으로(以) <만물이>이루어졌지만(成而) 그(其) 까닭(所以)을 알지 못하니(不知), 현묘하고(玄之) 또(又) 현묘하다(玄也)는 말이다(言).

 

1.3 故常無欲(고상무욕), 以觀其妙(이관기묘);  

그러므로(故) 언제나(常) 바라는 것이 없으면(無欲), 그것으로(以) 그(其) <사물이 시작되는> 신묘함(妙)을 보고(觀);

 

妙者, 微之極也. 萬物始於微而後成, 始於無而後生. 故常無欲空虛, 可以觀其始物之妙.

묘란(妙者), 미세함의(微之) 극치다(極也). 만물이(萬物) 미세함에서(於微) 시작하고(始) 나서(而後) 이루어졌고(成), 없음에서(於無) 시작하고(始) 나서(而後) 생겨났다(生). 그러므로(故) 항상(常) 하고자 함이 없고(無欲) 공허하면(空虛), 그(其) 만물이(物) 시작한(始之) 신묘함(妙)을 볼(觀) 수 있다(可以).

 

1.4 常有欲(상유욕), 以觀其徼(이관기요).

항상(常) 바라는 것이 있으면(有欲), 그것으로(以) 그(其) 돌아가서 끝나는 곳 / 변방(徼)을 본다(觀).

 

* 徼(요): 돌다, 순행하다, 구하다, 막다, 훔치다, 미묘하다, 변방, 심원한 곳.

 

徼, 歸終也. 凡有之為利, 必以無為用. 欲之所本, 適道而後濟. 故常有欲, 可以觀其終物之徼也.

요(徼)는, 돌아가서(歸) 끝남이다(終也). 모든(凡) 있음(有之)이 이익이 되는(為利) 것은, 반드시(必) 없음이(無) 쓰임이 되기(為用) 때문이다(以). 하고자 함의(欲之) 뿌리가 되는 것(所本)은, 도에 나아가고(適道) 나서야(而後) 가지런해진다(濟). 그러므로(故) 항상(常) 하고자 함이 있으면(有欲), 그(其) 사물이 마치는(終物之) 돌아감을(徼) 헤아릴(觀) 수 있다(可以-也).

 

1.5 此兩者同出而異名(차양자동출이이명), 同謂之玄(동위지현), 玄之又玄(현지우현), 衆妙之門(중묘지문).

이(此) 두(兩) 가지는(者) 같지만(同) 나와서(出而) 이름이(名) 달라졌으니(異), 같은 것(同) 그것을(之) 현(玄)이라고 부르니(謂), 현묘하고(玄之) 또(又) 현묘해서(玄), 모든() 신묘함의(妙之) 문이다(門).

 

兩者, 始與母也. 同出者, 同出於玄也.

두 가지는(兩者), 시작과(始與) 어머니다(母也). 같이 나온(同出) 것(者)은, 현에서(於玄) 같이 나옴이다(同出也).

 

異名, 所施不可同也. 在首則謂之始, 在終則謂之母.

이름이(名) 다른(異) 것은, 베푸는 것(所施)이 같을 수 없음이다(不可同也). 앞에(首) 있으면(在則) 그것을 시작이라고(之始) 부르고(謂), 끝에 있으면(在終則) 그것을 어머니(之母)라고 부른다(謂).

 

玄者, 冥也, 默然無有也. 始母之所出也, 不可得而名.

현이란(玄者), 그윽함이고(冥也), 고요한 가운데(默然) 있음이(有) 없는(無) 것이다(也). 시작(始)과 어머니가(母之) 나오는(出) 곳이니(所也), 이름 붙일(名) 수 없다(不可得而).

 

故不可言, 同名曰玄, 而言謂之玄者, 取於不可得而謂之然也.

그러므로(故) 함께(同) 이름 붙여(名) 현이라고(曰玄) 말할(言) 수 없지만(不可, 而) 그것을 (之) 현(玄)이라고 말한(言謂) 것(者)은, 그것을(之) 그렇게(然) 말할(謂) 수 없음(不可得而)에서(於) 취했다(取-也).

 

[不可得而]謂之然則不可以定乎一玄而已, 則是名則失之遠矣. 故曰, 玄之又玄也. 

그것을(之) 그렇게(然) 부를(謂) 수 없으면(不可得而則) 하나의(一) 현에(乎玄) 고정할(定) 수 없고(不可以而已), 만약(若) 하나의 현에(乎一玄) 고정한다면(定則) 이것은(是) 이름이 되고(名) 곧(則) 잃는 것이(失之) 크다(遠矣). 그러므로 말하기를(故曰), 현묘하고(玄之) 또(又) 현묘하다(玄也)고 했다. 

 

眾妙皆從同而出, 故曰眾妙之門也. 

온갖(眾) 신묘함(妙)이 모두(皆) 같은 현을(同[玄]) 쫒아서(從而) 나왔고(出), 그러므로(故) 말하기를(曰) 온갖 신묘함의(眾妙之) 문이다(門也)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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