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악을 먼저 다스린다면
樊遲從遊於舞雩之下(번지종유어무우지하), 曰: “敢問崇德, 脩慝, 辨惑.” (감문숭덕 수특 변혹)
번지가(樊遲) 따라와서(從) 무우 아래에서(於舞雩之下) 놀면서(遊), 말하기를: “감히(敢) 덕을 덕을 높이고(崇德), 간악함을 다스리고(脩慝), 미혹을 분별함(辨惑)을 물습니다(問).”
匿, 蓋惡之匿於心者. 脩者, 治而去之.”
특(匿)은, 대체로(蓋) 악이(惡之) 마음에(於心) 숨은(匿) 것이다(者). 수는(脩者), 다스려서(治而) 그것을 없앰이다(去之).”
子曰: “善哉問! (선재문)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좋구나(善哉) 질문이(問)!
善其切於爲己. 그(其) 자기를 위함에(於爲己) 간절함을(切) 좋게 여겼다(善).
先事後得(선사후득), 非崇德與(비숭덕여)? 攻其惡(공기악), 無攻人之惡(무공인지악), 非脩慝與(비수특여)? 一朝之忿(일조지분), 忘其身(망기신), 以及其親(이급기친), 非惑與(비혹여)?”
일을 먼저하고(先事) 얻음을 뒤로하면(後得), 덕을 높임이(崇德) 아니겠는가(非與)? 자기(其) 악을(惡) 다스리고(攻), 다른 사람의(人之) 악(惡)을 다스림이(攻)이 없으면(無), 간악함을 다스림(脩慝)이 아니겠는가(非與)? 하루 아침의(一朝之) 분노로(忿), 자기 몸을(其身) 잊고(忘), 그것으로(以) 그(其) 부모(親)에게 미치면(及), 미혹이(惑) 아니겠는가(非與)?”
○ 先事後得, 猶言先難後獲也. 爲所當爲而不計其功, 則德日積而不自知矣. 專於治己而不責人, 則己之惡無所匿矣.
선사후득(先事後得)은, 어려운 것을 먼저 하고(先難) 얻는 것을 나중에 한다(後獲)는 말(言)과 같다(猶也). 마땅히 할(當爲) 것(所)을 하고(爲而) 그 공덕을(其功) 헤아리지 않으면(不計, 則) 덕이(德) 날마다(日) 쌓이고(積而) 스스로(自) 알지 못한다(不知矣). 자기를 다스림에(於治己) 오로지 하고(專而) 남을 책망하지(責人) 않으면(不, 則) 자기의(己之) 악이(惡) 숨을 곳(所匿)이 없다(無矣).
知一朝之忿爲甚微, 而禍及其親爲甚大, 則有以辨惑而懲其忿矣. 樊遲麤鄙近利, 故告之以此, 三者皆所以救其失也.
하루아침의(一朝之) 분노(忿) 매우 작은(甚微) 것이고(爲, 而) 화가(禍) 그(其) 부모에게(親) 미침이(及) 매우 크게(甚大) 됨을(爲) 안다면(知, 則) 미혹을 분별하고(辨惑而) 그(其) 분노(忿)를 다스릴(懲) 수 있다(有以矣). 번지가(樊遲) 비루하게(麤鄙) 이익을 가까이 하고(近利), 그러므로(故) 그에게(之) 이것으로(以此) 일러주어(告), 세 가지가(三者) 모두(皆) 그 잘못을(其失) 고치는(救) 것이다(所以也).
○ 范氏曰: “先事後得, 上義而下利也. 人惟有利欲之心, 故德不崇. 惟不自省己過而知人之過, 故慝不脩.
범씨가 말하기를: 선사후득(先事後得)은, 의를 높이고(上義而ㅒ 이익을 낮춤이다(下利也). 사람이(人) 오직(惟) 이익을 바라는(利欲之) 마음이(心) 있고(有), 그러므로(故) 덕이(德) 높여지지 않는다(不崇). 오직(惟) 자기 과실을(己過) 스스로 살피지(自省) 않고(不而) 남의 과실을(人之過) 알며(知), 그러므로(故) 간악함이(慝) 다스려지지 않는다(不脩).
感物而易動者莫如忿, 忘其身以及其親, 惑之甚者也. 惑之甚者必起於細微, 能辨之於早, 則不至於大惑矣.
사물에 감응하여(感物而) 쉽게(易) 움직이는(動) 것이(者) 분노만한(如忿) 것이 없고(莫), 자기 몸(其身)을 잊고(忘) 그것으로(以) 그(其) 부모에게(親) 미침은(及), 미혹이(惑之) 심한(甚) 것이다(者也). 미혹이(惑之) 심한(甚) 것은(者) 반드시(必) 작은데서(於細微) 일어나고(起), 조기에(於早) 이것을(之) 분별할 수 있다면(能辨, 則) 큰 미혹에(於大惑) 이르지 않는다(不至矣).
故懲忿所以辨惑也.”
그러므로(故) 분노를 다스림이(懲忿) 미혹을 분별하는(辨惑) 방법이다(所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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