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게 하고, 나아가게 하고: 사람에 따라 다르게 가르친 이유
子路問: “聞斯行諸(문사행저)?” 子曰: “有父兄在(유부형재), 如之何其聞斯行之(여지하기문사행지)?”
자로가 묻기를: 들으면(聞斯) 그것을 행해야 할까요(行諸)?”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부형이(父兄) 계심(在)이 있는데(有), 어찌(如之何) 그것을(其) 들으면(聞斯) 그것을 행하겠는가(行之)?”
- 聞斯行諸: '斯'는 '~하면'으로 조건에 따른 결과를 표시하는 접속사다. '諸'는 문장 끝에서 '之乎'의 뜻으로 쓴다.
冉有問: “聞斯行諸(문사행저)?” 子曰: “聞斯行之(문사행지).”
염유가 묻기를: 들으면(聞斯) 그것을 행해야 할까요(行諸)?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들으면(聞斯) 그것을 행해라(行之).”
公西華曰: “由也問聞斯行諸(유야문문사행저), 子曰 ‘有父兄在(유부형재); 求也問聞斯行諸(구야문문사행저),’ 子曰 ‘聞斯行之(문사행지).’ 赤也惑, 敢問(적야혹 감문).”
공서화가 말하기를: 유가(由也) 들으면 그것을 행할까요(聞斯行諸)를 묻고(問),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부형이 계심이 있다(有父兄在)고 하고; 구가(求也) 들으면 그것을 행할까요(聞斯行諸)를 묻었는데(問),’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들으면(聞斯) 그것을 행해라(行之)고 했다. 적이(赤也) 의혹이 생겨서(惑), 감히(敢) 묻습니다(問).
子曰: “求也退, 故進之(구야퇴 고진지); 由也兼人, 故退之(유야겸인 고퇴지).”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구는(求也) 물어나고(退), 그러므로(故) 그를(之) 나아가게(進) 했고; 유는(由也) 남(人)의 <일까지> 겸하고(兼), 그러므로(故) 그를(之) 물러나게 했다(退).”
兼人, 謂勝人也.
겸인(兼人)은, 남보다 나음을(勝人) 말한다(謂)也.
張敬夫曰: “聞義固當勇爲, 然有父兄在, 則有不可得而專者. 若不稟命而行, 則反傷於義矣.
장경부가 말하기를: 의를(義) 들으면(聞) 진실로(固) 마땅히(當) 용감하게(勇) 해야 하고(爲), 그러나(然) 부형이(父兄) 계심(在)이 있으면(有, 則) 얻어서(得而) 혼자 마음대로(專) 할 수 없는(不可) 것(者)이 있다(有). 만약(若) 명을 받지(稟命) 못했는데(不而) 행한다면(行, 則) 도리어(反) 의를(於義) 해친다(傷矣).
子路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 則於所當爲, 不患其不能爲矣; 特患爲之之意或過, 而於所當稟命者有闕耳.
자로(子路)가 들은(聞) 것이 있고(有), 그것을(之) 행할 수(能行) 없으면(未), 오히려(唯) <새로> 듣는(聞) 것이 있을까(有) 염려했다(恐). 그렇다면(則) 마땅히 해야할(所當爲) 것에(於) 대하여, 그(其) 행할(爲) 수 없음(不能)을 근심하지 않고(不患矣); 다만(特) 그것을 행하는(爲之之) 뜻이(意) 혹(或) 지나쳐서(過, 而) 마땅히(當) 명 받아야 할(稟命) 것(所-者)에 대해서(於) 빠진 것이(闕) 있는지를(有) 걱정할 뿐이다(患耳).
若冉求之資稟失之弱, 不患其不稟命也; 患其於所當爲者逡巡畏縮, 而爲之不勇耳.
염구의(冉求之) 자품(資稟)과 같다면(若) 결함이(失之) 나약함이니(弱), 그(其) 품명받지(稟命) 않음(不)을 걱정하지 않고(不患也); 그(其) 마땅히 해야할(當爲) 것에(所-者) 대해서(於) 뒷걸음치고(逡巡) 두려워 위축되어(畏縮, 而) 행동이(爲之) 용감하지 못할까(不勇) 걱정일 뿐이다(患耳).
聖人一進之, 一退之, 所以約之於義理之中, 而使之無過不及之患也.”
성인이(聖人) 한 명(一)은 나아가게 하고(進之), 한 명은(一) 물러나게 하여(退之), 의리의(義理之) 가운데서(於中) 그를 묶는(約之) 것으로(所以, 而) 그로 하여금(使之) 과불급의(過不及之) 걱정이(患) 없도록(無) 했다(也).
교조주의는 하나의 원칙을 모든 사람에게 강요한다. 공자는 교조주의자가 아니다. 또한, 모든 종교는 초월과 죽음의 문제를 주제로 삼는다. 하지만 공자는 그 문제를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그런 문제를 풀어낸다. 여기 공자의 대답도 방편설법의 하나다. '문사행저聞斯行諸'의 '사斯'는 '즉則'으로 해석한다. <논어 한글역주, 김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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