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朱子曰: "命, 猶令也. 率, 循也."
朱子曰: "명은(命), 명령과 같다(猶令也). 솔은(率), 순(따름)이다(循也)."
○箴曰 天性二字, 始發於〈西伯戡黎〉‘不虞天性’一語. 《易傳》‘盡性’之句, 《孟子》‘知性’之訓, 皆後於是也. 【〈湯誥〉云‘降衷下民, 若有恒性', 僞也】
○箴曰 천과 성이란(天性) 두 글자는(二字), 처음에(始) 서백감려의(於〈西伯戡黎〉) ‘천성을 생각하지 않는다(不虞天性)’란 한 구절에서(一語) 사용했다(發). 역전의(《易傳》)‘본성을 다하다(盡性)’란 구절과(之句), 맹자의(《孟子》) ‘성을 알다(知性)’란 교훈은(之訓), 모두(皆) 이것보다(於是) 나중이다(後也). 【탕고에 이르길(〈湯誥〉云) ‘아래 백성에게(下民) 참마음을 내려(降衷), 항성이 있는 것처럼 한다(若有恒性)'는, 위작이다(僞也)】
此經‘天命之性', 卽祖伊所言之‘天性’也. 然據‘性’字本義而言之, 則性者, 心之所嗜好也. 〈召誥〉云‘節性唯日其邁', 【古傳·今傳, 皆以爲食色之欲】 孟子曰‘動心忍性', 〈王制〉云‘修六禮以節民性', 皆以嗜好爲性也.
이 경의(此經) ‘천명지성(天命之性)'은, 곧(卽) 조이가(祖伊) 말한(所言之) ‘천성(天性)’이다(也). 그러나(然) 성자의(‘性’字) 본뜻에(本義) 근거해서(據而) 말하자면(言之, 則) 성이란(性者), 마음이(心之) 좋아하는 것이다(所嗜好也). 소고에 이르길(〈召誥〉云) ‘성을 절제하고(節性) 오직(唯) 나날이(日) 힘쓴다(其邁)', 【고전과 금전이(古傳·今傳), 모두(皆) 식색의 욕구로 여겼다(以爲食色之欲)】 맹자가 말하길(孟子曰) ‘마음을 움직이고(動心) 성을 참는다(忍性)'와, 왕제에 이르길(〈王制〉云) ‘육례를 닦아(修六禮以) 백성을 성을 절제한다(節民性)'는, 모두(皆) 기호로(以嗜好) 성을 말했다(爲性也).
天命之性, 亦可以嗜好言. 蓋人之胚胎旣成, 天則賦之以靈明無形之體, 而其爲物也, 樂善而惡惡, 【余有先諱, 每云樂善】 好德而恥汚, 斯之謂性也, 斯之謂性善也.
천명지성도(天命之性), 또한(亦) 기호라고(嗜好) 말할 수 있다(可以言). 대개(蓋) 사람을(人之) 배서(胚胎) 이미 만들어지면(旣成), 하늘이(天則) 영명하고 형체가 없는(以靈明無形之) 본체를(體) 거기에 주고(賦之, 而) 그(其) 본체는(爲物也), 선을 좋아하고(樂善而) 악을 미워하며(惡惡), 【나에게(余) 선휘가 있어서(有先諱), 늘(每) 낙선이라고 한다(云樂善)】 덕을 좋아하고(好德而) 더러움을 부끄럽게 여기니(恥汚), 이것을(斯之) 성이라 하고(謂性也), 이것을(斯之) 성선이라 한다(謂性善也).
* 胚胎(배태): 1. 아이나 새끼를 뱀, 2. 어떤 일이 일어날 요소(要素)를 내면적(內面的)으로 가짐.
性旣如是, 故毋用拂逆, 毋用矯揉, 只須率以循之, 聽其所爲. 自生至死, 遵此以往, 斯之謂道也.
성이(性) 곧(旣) 이와 같고(如是), 그러므로(故) 거슬리지 말아야 하고(毋用拂逆), 휘어잡지도 말고(毋用矯揉), 단지 모름지기(只須) 좇아서(率以) 따르고(循之), 그 하는 것을(其所爲) 들어준다(聽). 태어나서부터(自生) 죽을 때까지(至死), 이것을 따라서(遵此以) 가니(往), 이것을(斯之) 도라 한다(謂道也).
* 矯揉(교유): (잘못된 것을)손질해서 바로 고침.
但道路爲物, 舍之不治, 則蓁莽阻塞, 莫適所向. 必有亭堠之官, 爲之治之·繕之·開之·導之, 使行旅弗迷其方, 然後方可以達其所往. 聖人之牖導衆人, 其事相類, 斯之謂敎也. 敎者, 繕治道路者也.
다만(但) 도로라는(道路) 물건은(爲物), 버려두고(舍之) 관리하지 않으면(不治, 則) 풀이 우거져(蓁莽) 막히고(阻塞), 향하여 갈 곳을(所向) 찾을 수 없다(莫適). 반드시(必) 정후하는 관리가 있어(有亭堠之官), 그것을 위하여(爲之) 관리하고(治之)·고치고(繕之)·열고(開之)·이끌어서(導之), 여행자로 하여금(使行旅) 그 방향을 헤매지 않도록 하고(弗迷其方), 나서야(然後) 비로소(方) 그 가려는 곳에(其所往) 도달할 수 있다(可以達). 성인이(聖人之) 많을 사람을(衆人) 깨우쳐 인도하는 것이(牖導), 그 일이(其事) 서로 비슷하니(相類), 이것을(斯之) 교라 한다(謂敎也). 교란(敎者), 도로를(道路) 고치고 관리하는 것이다(繕治者也).
○敎者, 五敎也. 下文曰: "修身以道, 修道以仁." 【‘哀公’章】 仁者, 人倫之成德也. 天之所以察人善惡, 恒在人倫, 故人之所以修身事天, 亦以人倫致力. 下文所謂‘五達道', 卽修道之敎也. 人能於父子·君臣·夫婦·昆弟·朋友之際, 盡其心之中和, 則修道者也.
○교란(敎者), 다섯 가지 가르침이다(五敎也). 아래 글에서 말하길(下文曰): "도로써(以道) 몸을 닦고(修身), 인으로써(以仁) 도를 닦는다(修道)." 【‘哀公’章】 인이란(仁者), 인륜의(人倫之) 성덕이다(成德也). 하늘이(天之) 사람의 선악을(人善惡) 살피는 것은(所以察), 늘(恒) 인륜에 있고(在人倫), 그러므로(故) 사람이(人之) 몸을 닦아(修身) 하늘을 섬기는 것도(所以事天), 또한(亦) 인륜으로(以人倫) 힘을 다하는 것이다(致力). 아래 글에서(下文) 이른바(所謂) ‘오달도(五達道)'란, 곧(卽) 도를 닦는(修道之) 가르침이다(敎也). 사람이(人) 부자, 군신, 부부, 곤제, 붕우의 사이에(於父子·君臣·夫婦·昆弟·朋友之際), 그 마음의 중화를(其心之中和) 다할 수 있다면(能盡, 則) 도를 닦는 것이다(修道者也).
箴曰 人方以靈明之全體爲性, 其必以嗜好爲性者, 何也? 人有恒言曰‘我性嗜膾炙', 曰‘我性惡饐敗', 曰‘我性好絲竹', 曰‘我性惡蛙聲', 人固以嗜好爲性也. 故孟子論性善之理, 輒以嗜好明之, 【見〈告子〉·〈盡心〉】 孔子引‘秉彝好德’之詩, 以證人性, 舍嗜好而言性者, 非洙·泗之舊也.
箴曰 사람들이(人) 바야흐로(方) 영명한 전체를(以靈明之全體) 성으로 여기는데(爲性), 그(其) 반드시(必) 기호를(以嗜好) 성이라 하는 것은(爲性者), 어째서인가(何也)? 사람들에게(人) 늘 하는 말이 있어(有恒言) 말하기를(曰) ‘내 성미가(我性) 회와 구운 고기를 좋아한다(嗜膾炙)'라거나, 말하기를(曰) ‘내 성미가(我性) 쉬고 썩은 것을 싫어한다(惡饐敗)'라거나, 말하기를(曰) ‘내 성미가(我性) 관악과 현악을 좋아한다(好絲竹)'라거나, 말하기를(曰) ‘내 성미가(我性) 개구리 소리를 싫어한다(惡蛙聲)'라고 하니, 사람은(人) 진실로(固) 좋아하는 것을(以嗜好) 성으로 여긴다(爲性也). 그러므로(故) 맹자가(孟子) 성선의 이치를 논할 때(論性善之理), 바로(輒) 좋아하는 것으로(以嗜好) 밝혔고(明之), 【見〈告子〉·〈盡心〉】 공자가(孔子) ‘병제호덕(秉彝好德)’의 시를(之詩) 인용해서(引, 以) 인성을 증명했으니(證人性), 좋아하는 것을 버리고(舍嗜好而) 성을 말하는 것은(言性者), 공맹의 옛 법이(洙·泗之舊) 아니다(非也).
* 膾炙(회자): 「회와 구운 고기」라는 뜻으로, 널리 칭찬(稱讚)을 받으며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傳)해지는 것.
* 絲竹(사죽)→管絃(관현): 관악기(管樂器)와 현악기(絃樂器).
○荀卿言性惡, 揚雄言善惡渾, 其謂之性善者, 何也? 性若不善, 安得率之? 若善惡渾, 安得率之? 必其物純善無惡, 故可以率之循之, 如鋸者之循繩墨, 濟者之循橋梁. 若其中微有不善, 聖人立敎, 必當曰‘違之拂之, 改之揉之', 豈得以率性爲道乎?
○순경이(荀卿) 성악을 말하고(言性惡), 양웅이(揚雄) 선악의 혼재를 말했는데(言善惡渾), 그가(其) 그것을(之) 성선이라고(性善) 말한 것은(謂者), 어째서인가(何也)? 성이(性) 만약(若) 선하지 않다면(不善), 어찌(安) 그것을 따를 수 있는가(得率之)? 만약(若) 선악이 섞여 있다면(善惡渾), 어찌(安) 그것을 따를 수 있는가(得率之)? 반드시(必) 그것이(其物) 오로지 선해서(純善) 악이 없고(無惡), 그러므로(故) 따를 수 있으니(可以率之循之), 마치(如) 톱질하는 사람이(鋸者之) 먹줄을 따르고(循繩墨), 물을 건너는 사람이(濟者之) 다리를 따르는(循橋梁) 것과 같다. 만약(若) 그 가운데(其中) 조금이라도(微) 불선이 있다면(有不善), 성인이(聖人) 가르침을 세워(立敎), 반드시(必當) ‘ 어기고(違之) 거스르고(拂之), 고치고(改之) 바로잡으라고(揉之)' 말할 것이니(曰), 어찌(豈) 성을 따르는 것을(以率性) 도라고 여기지 않겠는가(得爲道乎)?
* 繩墨(승묵): 먹줄. 먹통에 딸린 실줄.
○人恒陷於惡, 其謂之性善者, 何也? 人每行一善事, 其心必愉然以快, 豈非適性故愉然乎? 人每行一惡事, 必欿然自蹙, 豈非拂性故欿然乎? 赤子入井, 必急往援出, 而後安於心, 鶂肉當前, 必固辭不食, 而後安於心, 班斑同行, 必分其重任, 然後安於心, 善人被誣, 必㬥其寃枉, 然後安於心. 凡遇此而不能行者, 皆恧蹙不安, 其安與不安, 豈非適性與拂性之故乎? 故曰‘率性可以爲善’.
○사람은(人) 늘(恒) 악에 빠지는데(陷於惡), 그가(其) 성선이라고(性善) 말한 것은(謂之者), 어째서인가(何也)? 사람들이(人) 늘(每) 하나의 착한 일을 하면(行一善事), 그 마음이(其心) 반드시(必) 즐겁고(愉然以) 기쁘니(快), 어찌(豈) 본성에 알맞은 것이(適性) 기쁜 까닭이(故愉然) 아니겠는가(非乎)? 사람은(人) 늘(每) 하나의 악한 일을 하면(行一惡事), 반드시(必) 구렁텅이에 빠진 듯(欿然) 스스로 움츠러드니(自蹙), 어찌(豈) 본성을 거슬러서(拂性故) 함정에 빠진 듯하는 것이(欿然) 아니겠는가(非乎)? 어린아이가(赤子) 우물에 들어가면(入井), 반드시(必) 급히 가서(急往) 구해 나오고(援出), 나서야(而後) 마음에 편안하고(安於心), 오리 고기가(鶂肉) 앞에 당도했다면(當前), 반드시(必) 굳이(固) 사양하고 먹지 않고(辭不食), 나서야(而後) 마음에 편안하고(安於心), 반백의 노인과(班斑) 함께 길을 가면(同行), 반드시(必) 그 무거운 짐을(其重任) 나누고(分), 나서야(然後) 마음에 편안하고(安於心), 착한 사람이(善人) 비방을 당하면(被誣), 반드시(必) 그 원통하고 억울함을(其寃枉) 밝혀주고(㬥), 나서야(然後) 마음에 편안하다(安於心). 무릇(凡) 이런 일을 만나서(遇此而) 행할 수 없는 사람은(不能行者), 모두(皆) 부끄러워 움츠리고(恧蹙) 불안하며(不安), 그(其) 편안함과 불안함이(安與不安), 어지(豈) 본성에 맞게 하는 것과(適性與) 본성을 거슬렀는가 하는(拂性之) 이유 때문이 아니겠는가(非故乎)? 그러므로(故) 말하기를(曰) ‘본성을 따르면(率性) 선할 수 있다(可以爲善)’.
○率性之謂道, 故性之所發, 謂之道心. 【性生於心, 故從心從生】 道心常欲爲善, 又能擇善. 一聽道心之所欲爲, 【循其欲】 玆之謂率性. 率性者, 循天命也. 不義之食在前, 口腹之慾溢發, 心告之曰‘勿食哉. 是不義之食也', 我乃順其所告, 郤之勿食, 玆之謂率性, 率性者, 循天命也. 四體薾然, 常欲疲臥, 道心告之曰‘勿偃哉. 是怠慢之習也', 我乃順其所告, 蹶然起坐, 玆之謂率性, 率性者, 循天命也.
○본성을 따르는 것을(率性之) 도라 하고(謂道), 그러므로(故) 본성이(性之) 드러나는 것을(所發), 도심이라 한다(謂之道心). 【본성은(性) 마음에서 나고(生於心), 故從心從生】 도심은(道心) 늘(常) 선을 행하려고 하고(欲爲善), 또(又) 선을 택할 수 있다(能擇善). 한 번(一) 도심이(道心之) 하려는 것을(所欲爲) 들으면(聽), 【그 욕망을 따른다(循其欲)】 그것을(玆之) 본성을 따랐다고 말한다(謂率性). 솔성이란(率性者), 천명을 따르는 것이다(循天命也). 불의한 음식이(不義之食) 앞에 있을 때(在前), 입과 배의(口腹之) 욕심이(慾) 넘쳐 나온다면(溢發), 마음이(心) 고하여 말하길(告之曰) ‘먹지 말아라(勿食哉). 이것은(是) 불의한 음식이다(不義之食也)', 나는(我) 바로(乃) 그 일러준 것을 따라(順其所告), 그것과 거리를 두고(郤之) 먹지 않으면(勿食), 이것을(玆之) 솔성이라 하고(謂率性), 성을 따르는 것은(率性者), 천명을 따르는 것이다(循天命也). 온몸이(四體) 피곤하여(薾然), 늘(常) 눕고 싶지만(欲疲臥), 도심이(道心) 고하여 말하길(告之曰) ‘눕지 말아라(勿偃哉). 이것은(是) 태만한(怠慢之) 습관이다(習也)'하면, 내가(我) 곧(乃) 그 고함을 따라(順其所告), 벌떡(蹶然) 일어나 앉으면(起坐), 그것을(玆之) 솔성이라 하니(謂率性), 솔성이란(率性者), 천명을 따르는 것이다(循天命也).
○天於賦生之初, 有此命, 又於生居之日, 時時刻刻, 續有此命. 天不能諄諄然命之, 非不能也, 天之喉舌, 寄在道心, 道心之所儆告, 皇天之所命戒也. 人所不聞, 而己獨諦聽, 莫詳莫嚴, 如詔如誨, 奚但諄諄已乎? 事之不善, 道心愧之, 愧怍之發, 諄諄乎天命也. 行有不善, 道心悔之, 悔恨之發, 諄諄乎天命也. 《詩》云‘天之牖民, 如塤如篪', 非是之謂乎? ‘對越上帝之只在方寸', 正亦以是. 求天命於圖籙者, 異端荒誕之術也, 求天命於本心者, 聖人昭事之學也.
○하늘이(天) 생명을 준(賦生之) 처음에(於初), 이런 명이 있고(有此命), 또(又) 살아가는(生居之) 날에(於日), 시시각각(時時刻刻), 계속(續) 이 명령이 있다(有此命). 하늘이(天) 타이르는 듯이(諄諄然) 명령하지 않는 것은(不能命之), 할 수 없어서가 아니고(非不能也), 하늘의 목구멍과 혀는(天之喉舌), 의탁한 것이(寄) 도심에 있고(在道心), 도심이(道心之) 경고하는 것은(所儆告), 하늘이(皇天之) 명령하고 경계하는 것이다(所命戒也). 남들이(人) 듣지 않더라도(所不聞, 而) 자기 혼자(己獨) 주의해서 들으면(諦聽), 이보다 자세한 것이 없고(莫詳) 엄중한 것이 없으니(莫嚴), 가르치는 듯하고(如詔) 인도하는 듯하니(如誨), 어찌(奚) 단지(但) 타이르는 것에(諄諄) 그치겠는가(已乎)? 일이(事之) 선하지 않으면(不善), 도심이(道心) 부끄러워하고(愧之), 부끄러움이 일어나면(愧怍之發), 타이르는 듯하니(諄諄乎) 천명이다(天命也). 행실에(行) 불선이 있으면(有不善), 도심이(道心) 부끄러워하고(悔之), 후회가(悔恨之) 일어나는 것은(發), 타이르는 듯하니(諄諄乎) 천명이다(天命也). 시에 이르길(《詩》云) ‘하늘이(天之) 백성을 깨우치는 것이(牖民), 질나발 부는 듯하고(如塤) 피리 부는 듯하다(如篪)', 이것을(是之) 말함이(謂) 아니겠는가(非乎)? ‘상제를 마주하여 뛰어넘는 것은(對越上帝之) 다만(只) 내 마음에 있다(在方寸)', 바로(正) 또한(亦) 이 때문이다(以是). 도록에서(於圖籙) 천명을 구하는 것은(求天命者), 이단의(異端) 허황된(荒誕之) 사술이고(術也), 마음에서 천명을 구하는 것은(求天命於本心者), 성인이(聖人) 일을 밝힌(昭事之) 학문이다(學也).
* 諦聽 (체청): 주의(注意)하여 자세(仔細)히 들음.
* 牖民(유민): 백성(百姓)의 지혜(智慧ㆍ知慧)를 깨우쳐 일깨워 줌.
* 圖籙(도록)→圖讖(도참): 미래(未來)의 길흉(吉凶)에 관(關)하여 예언(豫言)하는 술법(術法)이나 또는 그러한 내용(內容)이 적힌 책(冊).
○道者, 自此至彼之路也. 率道心而前進, 殀壽不貳, 止於所止者, 謂之道也. 斯道也, 生而起程, 死而後到, ‘任重致遠', 非斯之謂歟? 今人以經綸御世, 謂之行道. 試問自己所適, 茫然不省, 玆之謂不知, 玆之謂失路者也. 令天下之人, 咸遵率性之道, 方可謂之行道.
○도란(道者), 이곳에서(自此) 저곳에 이르는(至彼之) 길이다(路也). 도심을 따라(率道心而) 전진하고(前進), 일찍 죽더라도(殀壽) 의심하지 않고(不貳), 멈출 곳에서(於所止) 멈추는 것을(止者), 도라 한다(謂之道也). 이 도는(斯道也), 태어나면서(生而) 길 떠나고(起程), 죽고 나서야(死而後) 다하니(到), ‘임무는 무겁고(任重) 가야 할 길은 멀다(致遠)'란, 이것을(斯之) 말하는 것이(謂) 아니겠는가(非歟)? 지금 사람들이(今人) 경륜으로(以經綸)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御世), 도를 행했다고 말한다(謂之行道). 시험 삼아(試) 자기가(自己) 갈 곳을(所適) 물으면(問), 까마득히(茫然) 살피지 않으니(不省), 그것을(玆之) 알지 못한다고 하고(謂不知), 그것을(玆之) 길 잃은 것이라고 한다(謂失路者也). 지금(令) 천하 사람이(天下之人), 모두(咸) 솔성의 도를(率性之道) 따르도록 하는 것이(遵), 비로소(方) 도를 행했다고(行道) 말할 만하다(可謂之).
* 起程(기정): 길을 떠남, 길에 오름
○《辛未錄》曰: "天賦我性, 授之以好德【讀作善】之情, 畀之以擇善之能. 此雖在我, 其本天命也. 凡人認作自己本性, 所以慢之, 【不遵道心之所告戒】 一番推究, 認得此性本係天賦, 玆乃赫赫天命. 違此性之所欲, 行此性之所愧, 此是慢天命逆天命, 罪通于天矣. 故曰尊德性."
○신미록에 말하길(《辛未錄》曰): "하늘이(天) 나에게 본성을(我性) 부여하여(賦), 그것으로(之以) 선을 좋아하는 마음을(好德【讀作善】之情) 주었고(授), 그것으로(之以) 선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擇善之能) 주었다(畀). 이것이(此0 비록(雖) 나에게 있지만(在我), 그것은(其) 본래(本) 천명이다(天命也). 무릇(凡) 사람이(人) 자기 본성으로부터(自己本性) 일어난다고 알아(認作), 태만하게 되니(所以慢之), 【도심이(道心之) 일러 경계한 것을(所告戒) 따르지 않는다(不遵)】 한 번(一番) 미루어 연구해서(推究), 이 본성이(此性) 본래(本) 하늘이 부여한 것에(天賦) 매인 것을 안다면(認得係), 그것이(玆) 바로(乃) 빛나는(赫赫) 천명이다(天命). 이 본성이(此性之) 하려는 것을(所欲) 어겨(違), 이 본성이(此性之) 부끄러워하는 것을(所愧) 행하면(行), 이것이(此) 바로(是) 하늘의 명령을 태만히 하고(慢天命) 하늘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니(逆天命), 죄가(罪) 하늘에 이른다(通于天矣). 그러므로(故) 말하기를(曰) 덕성을 높이 받들라(尊德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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