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武伯問孝(맹무백문효). 子曰: “父母唯其疾之憂(부모유기질지우).”
맹무백(孟武伯)이 효를 물었다(問孝).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부모(父母)는 오직(唯) 그의(其) 질병을(疾之) 걱정한다(憂).
* 父母唯其疾之憂 : 본래 문장은 '父母唯憂其疾'이다. 목적어인 '其疾'을 강조하려고 동사 앞으로 보내고 목적어 전치를 표시하는 구조조사 '之'를 동사 앞에 두었다.
* '부모유기질지우父母唯其疾之憂'는 문법적으로 애매한 구조라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여기의 其를 해석하기에 따라 전체 문장의 주제가 달라진다. 한대의 왕충은 자식이 부모를 섬길 때 모든 것을 걱정하지 말고 오직 부모가 병을 앓을 것만을 걱정하라고 해석한다. 반면에 후한의 마융은 주어를 자식으로 보고, 其를 질병을 강조하는 수식어로 본다. 신체적으로 아픈 것, 병이 걸리는 것 말고는 부모가 걱정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해석한다. 송대의 신주는 '其'를 자식으로 보고, 문장의 주어를 부모로 보았다. 이러면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 것만을 걱정한다고 해석한다. 내가 아파서 부모의 마음이 아픈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효라는 공자의 말, 그 속에서 우리는 유교의 본질이 도덕적 논리의 강조가 아니라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정감에 호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김용옥, 논어한글역주>
武伯, 懿子之子, 名彘. 言父母愛子之心, 無所不至, 惟恐其有疾病, 常以爲憂也.
무백(武伯)은, 의자의 자식(懿子之子)이고, 이름이 체(名彘)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의(父母愛子之) 마음(心)이, 이르지 않는 곳(所不至)이 없지만(無), 오직(惟) 그(其) 질병이 있음(有疾病)을 걱정함(恐)이, 항상(常) 근심이 된다(以爲憂)는 말이다(言-也).
人子體此, 而以父母之心爲心, 則凡所以守其身者, 自不容於不謹矣, 豈不可以爲孝乎?
자식(人子)이 이것을 체득해서(體此, 而) 부모의 마음으로(以父母之心) <자기> 마음을 삼으면(爲心, 則) 무릇(凡) 그 몸 지키는(守其身) 것이(所以-者), 자연히(自) 삼가지 않는 것을(於不謹) 용납할 수 없으니(不容-矣), 어찌(豈) 효로 여기지(以爲孝) 않을 수(不可) 있겠는가(乎)?
舊說, 人子能使父母不以其陷於不義爲憂, 而獨以其疾爲憂, 乃可謂孝. 亦通.
구설(舊說)에, 자식(人子)이 부모로 하여금(使父母) 그가(其) 불의에 빠짐(陷於不義)을 걱정으로 여기지(以爲憂) 않도록(不) 하게 하면서(能使, 而), 오직(獨) 그 질병으로써(以其疾) 걱정이 되도록 하면(爲憂), 곧(乃) 효라고 할 수 있다(可謂孝)고 했다. 또한(亦) 통한다(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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