蘇秦始將連橫說秦惠王曰: “大王之國, 西有巴‧蜀‧漢中之利, 北有胡貉‧代馬之用, 南有巫山‧黔中之限, 東有肴‧函之固.
소진이(蘇秦) 처음으로(始將) 진나라 혜왕에게(秦惠王) 연횡책을(連橫說) 말했다(曰): “대왕의(大王之) 나라는(國), 서쪽에(西) 파, 촉, 한중의(巴‧蜀‧漢中之) <지리적> 이점이(利) 있고(有), 북으로(北) 호락과(胡貉) 대마 땅의(代馬之) 요충지가(用) 있고(有), 남으로(南) 무산과(巫山) 검중의(黔中之) <험난한> 경계(限)가 있고(有), 동으로(東) 효산과(肴) 함곡의(函之) 견고함이(固) 있습니다(有).
田肥美, 民殷富, 戰車萬乘, 奮擊百萬, 沃野千里, 蓄積饒多, 地勢形便, 此所謂天府, 天下之雄國也.
농토는(田) 비옥하고 아름다우며(肥美), 백성은(民) 부유하고 넉넉하며(殷富), 전차는(戰車) 만승에 이르고(萬乘), 분발하여 일어날 <병사>(奮擊) 백만에 달하고(百萬), 비옥한 들판이(沃野) 천리나 되고(千里), 모아둔 것이(蓄積) 넉넉하고 많으며(饒多), 지세는(地勢) 형편이 좋으니(形便), 이것은(此) 이른바(所謂) 하늘이 내려준(天府) 것으로, 천하의(天下之) 강국입니다(雄國也).
以大王之賢, 士民之衆, 車騎之用, 兵法之敎, 可以幷諸侯, 呑天下, 稱帝而治. 願大王少留意, 臣請奏其效.”
대왕의(大王之) 현명함과(賢), 사와 백성의(士民之) 많음과(衆), 전차와 기병의(車騎之) 능력과(用), 병법의(兵法之) 가르침으로(以敎), 제후를(諸侯) 겸병하고(幷), 천하를(天下) 차지하여(呑), 제를 칭하고(稱帝而) 다스릴 수 있습니다(可以治). 원컨대(願) 대왕께서(大王) 조금(少) 뜻을 두신다면(留意), 신이(臣) 청컨대(請) 그 효과적인 <방책을>(其效) 아뢰고자 합니다(奏).”
秦王曰: “寡人聞之:毛羽不豐滿者, 不可以高飛; 文章不成者, 不可以誅罰.
진왕이(秦王) 말했다(曰): “과인이(寡人) 그것을 들었다(聞之): 깃털이(毛羽) 풍만하지 않은(不豐滿) 것은(者), 높이(高) 날 수 없고(不可以飛); 문장이(文章, 법령) 이루어지지 않으면(不成者), 주벌을 시행할 수 없다(不可以誅罰).
道德不厚者, 不可以使民, 政敎不順者, 不可以煩大臣. 今先生儼然不遠千里而庭敎之, 願以異日.”
도덕이(道德) 두텁지 않으면(不厚者), 백성을(民) 부릴 수 없으며(不可以使), 정치와 교화가(政敎) 순하지 않으면(不順者), 대신을(大臣) 부릴 수 없다(不可以煩). 지금(今) 선생께서(先生) 장엄하게(儼然) 천리를 멀다하지 않고(不遠千里而) 조정에서(庭) 가르치시려 하니(敎之), 원컨대(願) 다른 날로(以異日) 하려 합니다.”
蘇秦曰: “臣固疑大王之不能用也.
소진이 말했다(蘇秦曰): “신이(臣) 본래(固) 대왕께서(大王之) 쓰지 않을까(不能用, 등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했습니다(疑也).
昔者, 神農伐補遂, 黃帝伐涿鹿而禽蚩尤, 堯伐驩兜, 舜伐三苗, 禹伐共工, 湯伐有夏, 文王伐崇, 武王伐紂, 齊桓任戰而伯天下.
옛날에(昔者), 신농이(神農) 보수를(補遂) 정벌했고(伐), 황제가(黃帝) 축록을 치고(伐涿鹿而) 치우를(蚩尤) 사로잡고(禽), 요가(堯) 환도를 정벌하고(伐驩兜), 순이(舜) 삼묘를 정벌하고(伐三苗), 우가(禹) 공공을 정벌하고(伐共工), 탕이(湯) 유하를 정벌하고(伐有夏), 문왕이(文王) 숭을 정벌하고(伐崇), 무왕이(武王) 주를 정벌하고(伐紂), 제 환공이(齊桓) 전쟁에 임하여(任戰而) 천하를 제패했습니다(伯天下).
由此觀之, 惡有不戰者乎?
이것을(由此) 본다면(觀之), 어찌(惡) 전쟁하지 않는 사람이(不戰者) 있겠습니까(有乎)?
古者, 使車轂擊馳, 言語相結, 天下爲一, 約從連橫, 兵革不藏, 文士並飭, 諸侯亂惑, 萬端俱起, 不可勝理,
科條旣備, 民多僞態, 書策稠濁, 百姓不足,
옛날에는(古者), 사신의(使) 수레바퀴가(車轂) 치고 달리고(擊馳), 말이(言語) 서로 맺어져서(相結), 천하가(天下) 하나가 되기도 했는데(爲一), 약종과(約從) 연횡으로(連橫), 병기를(兵革) 감출 수 없고(不藏), 문사가(文士) 함께(並) 말을 지어내고(飭), 제후가(諸侯) 어지러히 현혹되고(亂惑), 온갖 갈래가(萬端) 갖추어져도(俱起), 모두(勝) 다스려지지 않고(不可理), 법률과 명령이(科條) 갖추어지고 나서도(旣備), 백성이(民) 거짓을(僞態) 많이 보이고(多), 서책이(書策) 많아졌어도(稠濁), 백성은(百姓) 궁핍해지고(不足),
上下相愁, 民無所聊, 明言章理, 兵甲愈起, 辯言偉服, 戰攻不息, 繁稱文辭, 天下不治, 舌弊耳聾, 不見成功, 行義約信, 天下不親.
상하가(上下) 서로 근심하는데도(相愁), 백성에게는(民) 의지할 것이(所聊) 없고(無), 밝은 말이(明言) 이론을 드러내도(章理), 전쟁은(兵甲) 더욱(愈) 일어나고(起), <사자가> 말을 잘하고(辯言) 복장을 위엄있게 해도(偉服), 전쟁이(戰攻) 그치지 않고(不息), 많은 칭송과(繁稱) 화려한 말에도(文辭), 천하가(天下) 다스려지지 않으니(不治), 혀가 닳도록 말하고(舌弊) 귀가 먹도록 들어도(耳聾), 성공을(成功) 볼 수 없고(不見), 의를 행하고(行義) 믿음을 약속해도(約信), 천하가(天下) 화친하지 못합니다(不親).
於是, 乃廢文任武, 厚養死士, 綴甲厲兵, 效勝於戰場.
이에(於是), 곧(乃) 문을 없애고(廢文) 무에 맡겨서(任武), 죽음 마다하지 않는 전사를(死士) 두텁게 기르고(厚養), 갑옷을 만들고(綴甲) 병기를 날카롭게 하여(厲兵), 싸움터에서(於戰場) 효율적으로 이기려고 합니다(效勝).
夫徒處而致利, 安坐而廣地, 雖古五帝‧三王‧五伯, 明主賢君, 常欲坐而致之, 其勢不能, 故以戰續之.
무릇(夫) <대왕께서> 단지 <편안히> 머물러서(徒處而) 이익에 이르고(致利), 편안히 앉아서(安坐而) 땅을 넓히는 것은(廣地), 비록(雖) 옛날(古) 오제(五帝)와 삼왕(三王), 오백(五伯), 밝고 현명한 군주라도(明主賢君), 늘(常) <편안히> 앉아서(坐而) 그것에 이르기를(致之) 바라지만(欲), 그 형세가(其勢) 이루어질 수 없고(不能), 그러므로(故) 전쟁으로(以戰) 그것을 이을 수 있습니다(續之).
寬則兩軍相攻, 迫則杖戟相橦, 然後可建大功.
물러나 있으면(寬則) 양쪽 군대가(兩軍) 서로 공격하고(相攻), 급박하면(迫則) 몽둥이와 창으로(杖戟) 서로 싸우고(相橦), 나서야(然後) 큰 공을(大功) 세울 수 있습니다(可建).
是故兵勝於外, 義强於內, 威立於上, 民服於下.
이런 까닭으로(是故) 군대가(兵) 밖에서(於外) 승리하고(勝), 인의가(義) 안에서(於內) 강력하고(强), 위의가(威) 윗람에게(於上) 서면(立), 백성이(民) 아래에서(於下) 복종합니다(服).
今欲幷天下, 凌萬乘, 詘敵國, 制海內, 子元元, 臣諸侯, 非兵不可.
지금(今) 천하를(天下) 합치고자 한다면(欲幷), 만승의 군대를(萬乘) 넘어서고(凌), 적국을(敵國) 궁지로 몰고(詘), 해내를(海內) 제압하여(制), 백성을(元元) 사랑하고(子), 제후를(諸侯) 신하로 삼는(臣) 것이, 군대가 아니라면(非兵) 할 수 없습니다(不可).
* 子元元: 子는 愛이며 元元은 善이다. 元元은 백성이란 뜻이 된다(진기환)
今之嗣主, 忽於至道, 皆惛於敎, 亂於治, 迷於言, 惑於語, 沈於辯, 溺於辭.
지금의(今之) 임금을 이은(嗣主) 대왕께서, 지극한 도를(於至道) 소홀히 하고(忽), 모두(皆) 가르침에(於敎) 어둡고(惛), 다스림에(於治) 혼란스럽고(亂), 말에(於言) 미혹되고(迷), 말에(於語) 혹하고(惑), 변론에(於辯) 빠지고(沈), 화려한 말에(於辭) 빠져 있습니다(溺).
以此論之, 王固不能行也.”
이것으로(以此) 논하더라도(論之), 왕께서는(王) 진실로(固) 행할 수 없습니다(不能行也).”
說秦王書十上而說不行.
진왕을 설득하는(說秦王) 글을(書) 열 번 이상(十) 올렸지만(上而) 설득이(說) 행해지지 않았다(不行).
黑貂之裘弊, 黃金百斤盡, 資用乏絶, 去秦而歸.
검은 담비(黑貂之) 가죽옷이(裘) 해지고(弊), 황금(黃金) 백근이(百斤) 다하고(盡), 밑천이(資用) 궁핍해져 떨어지자(乏絶), 진나라를 떠나서(去秦而) 돌아갔다(歸).
羸縢履蹻, 負書擔橐, 形容枯槁, 面目犁黑, 狀有歸(愧)色.
파리한 모습으로(羸) 다리를(履) 끈으로 동여매고(縢) 짚신을 신고(蹻), 책을 지고(負書) 보따리를 메고(擔橐), 외모는(形容) 마르고(枯槁), 얼굴과 눈이(面目) 까매져서(犁黑), 모습에(狀) 부끄러운 빛이(歸(愧)色) 있었다(有).
歸至家, 妻不下紝, 嫂不爲炊, 父母不與言.
돌아와(歸) 집에 다다르니(至家), 처가(妻) 베틀에서(紝) 내려오지 않고(不下), 형수가(嫂) 밥을 지어주지 않고(不爲炊), 부모가(父母) 함께(與) 말하지 않았다(不言).
蘇秦喟歎曰: “妻不以我爲夫, 嫂不以我爲叔, 父母不以我爲子, 是皆秦之罪也.”
소진이(蘇秦) 한탄하며(喟歎) 말했다(曰): “아내가(妻) 나를(以我) 남편으로 여기지 않고(不爲夫), 형수가(嫂) 나를(以我) 시동생으로 여기지 않고(爲叔), 부모가(父母) 나를(以我) 자식으로 여기지 않으니(不爲子), 이것이(是) 모두(皆) 진나라의 죄다(秦之罪也).”
乃夜發書, 陳篋數十, 得太公陰符之謀, 伏而誦之, 簡練以爲揣摩.
이에(乃) 밤사이(夜) 책을 펴고(發書), 상자에(篋) 수십 권을(數十) 늘어 놓고(陳), 태공의(太公) 음부경(陰符之) 책모를(謀) 찾아서(得), 엎드려서(伏而) 그것을 외우고(誦之), 가려 뽑아(簡) 연습하여(練以) 시험하고 갈고 닦았다(爲揣摩).
* 揣摩: 상대의 마음을 읽어 내어 그에 따라 설득시키는 일종의 話術法 또는 참뜻을 연구하는 일.
讀書欲睡, 引錐自刺其股, 血流至足.
책을 읽다가(讀書) 졸리면(欲睡), 송곳을 꺼내(引錐) 스스로(自) 자기 허벅지를(其股) 찌르고(刺), 피가 흘러(血流) 발까지 이르렀다(至足).
曰: “安有說人主不能出其金玉錦繡, 取卿相之尊者乎?”
말하기를(曰): “어찌(安) 임금을 설득해서(說人主) 그의(其) 금옥이나(金玉) 비단을(錦繡) 내놓게 할 수 없으면서(不能出), 경상의(卿相之) 존귀한 자리를(尊) 차지하는 것이(取者) 있겠는가(有乎)?”
期年揣摩成, 曰: “此眞可以說當世之君矣!”
1년이 지나(期年) 연습과 숙달이(揣摩) 이루어지고(成), 말했다(曰): “이것이면(此) 진실로(眞) 지금의(當世之) 임금을(君) 설득할 수 있다(可以說矣)!”
於是乃摩燕烏集闕, 見說趙王於華屋之下, 抵掌而談.
이에(於是) 곧(乃) 연나라(燕) 오집궐(烏集闕)에 가서(摩), 화옥산 아래에서(於華屋之下) 조왕을(趙王) 보고(見) 설득하여(說), 손바닥을 <마주> 잡고(抵掌而) 대화했다(談).
* 摩는 ‘가까이 이르다[迫近]’의 뜻. 烏集闕은 요새 이름.
* 見은 謁見, 說는 遊說. 趙王은 趙 肅侯. 華屋은 산 이름으로 보기도 하며 夏屋으로도 쓴다.
趙王大悅, 封爲武安君.
조왕이(趙王) 크게 기뻐하여(大悅), 무안군으로 삼아(爲武安君) 봉했다(封).
受相印, 革車百乘, 綿繡千純, 白壁(璧)百雙, 黃金萬溢, 以隨其後, 約從散橫, 以抑强秦.
재상의 인을(相印) 받고(受), 전차(革車) 백 승과(百乘), 비단(綿繡) 천 순(千純), 백벽(白壁(璧)) 백 쌍(百雙), 황금(黃金) 만 익으로(萬溢, 以) 그 뒤를(其後) 따르게 하고(隨), 합종을 약속 받고(約從) 연횡을 흩어버려서(散橫, 以) 강력한 진나라를(强秦) 억눌렀다(抑).
故蘇秦相於趙而關不通.
그러므로(故) 소진이(蘇秦) 조나라에서(於趙) 재상 노릇을 하면서(相而) 함곡관이(關) 통하지 않게 되었다(不通).
當此之時, 天下之大, 萬民之衆, 王侯之威, 謀臣之權, 皆欲決蘇秦之策.
이 시기를(此之時) 당하여(當), 천하의(天下之) 대국(大), 백성의(萬民之) 무리(衆), 왕후의(王侯之) 위엄(威), 모신의(謀臣之) 권력이(權), 모두(皆) 소진의(蘇秦之) 책략에(策) 따라 결정되었다(欲決).
不費斗糧, 未煩一兵, 未戰一士, 未絶一絃, 未折一矢, 諸侯相親, 賢於兄弟.
한 두의(斗) 군량도(糧) 소비하지 않고(不費), 한 명의 병사도(一兵) 수고롭게 하지 않고(未煩), 한 명의 전사도(一士) 싸움에 나서지 않고(未戰), 활줄 하나도(一絃) 끊어지지 않고(未絶), 화살 하나도(一矢) 부러지지 않았지만(未折), 제후가(諸侯) 서로 친해지고(相親), 형제보다(於兄弟) 가까웠다(賢).
夫賢人在而天下服, 一人用而天下從.
무릇(夫) 현인이(賢人) 자리에 있으면(在而) 천하가 복종하고(天下服), 한 명이(一人) 잘 쓰이면(用而) 천하가 따른다(天下從).
故曰:式於政, 不式於勇; 式於廊廟之內, 不式於四境之外.
그러므로 말하기를(故曰): 정치에서(於政) 쓰이고(式), 무력에서(於勇) 쓰이지 않고(不式); 조정의 안에서(於廊廟之內) 쓰이고(式), 사경의 바깥에서(於四境之外) 쓰이지 않는다(不式).
當秦之隆, 黃金萬溢爲用, 轉轂連騎, 炫熿於道, 山東之國, 從風而服, 使趙大重.
당시(當) 소진의(秦之) 융성한 시기에는(隆), 황금(黃金) 일만 익을(萬溢) 쓸 수 있고(爲用), 구르는 수레바퀴와(轉轂) 말의 이어짐이(連騎), 도로에서(於道) 화려하게 빛나고(炫熿), 산동의(山東之) 나라가(國), 바람을 따르듯이(從風而) 복종하고(服), 조나라를 하여금(趙)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도록(大重) 만들었다(使).
且夫蘇秦特窮巷掘門‧桑戶棬樞之士耳, 伏軾撙銜, 橫歷天下, 廷說諸侯之王, 杜左右之口, 天下莫之能伉.
또(且) 저(夫) 소진은(蘇秦) 다만(特) 가난한 골목의(窮巷) 낮은 대문(掘門)과 뽕나무 문(桑戶), 휘어진 나무 지도리 집에 사는(棬樞之) 선비였을 뿐인데(士耳), 伏軾撙銜, 橫歷天下, 廷說諸侯之王, 杜左右之口, 天下莫之能伉.
將說楚王, 路過洛陽, 父母聞之, 淸宮除道, 張樂設飮, 郊迎三十里.
장차(將) 초왕을 설득하려(說楚王) 하면서, <지나는> 길에(路) 낙양을 지나갔는데(過洛陽), 부모가(父母) 이것을 듣고(聞之), 집을 깨끗이 하고(淸宮) 길을 다듬어(除道), 음악을 베풀고(張樂) 음식을 베풀어(設飮), 교외(郊) 삼십 리 밖에서(三十里) 맞이했다(迎).
妻側目而視, 傾耳而聽; 嫂蛇行匍伏, 四拜自跪而謝.
아내는(妻) 곁눈질을 하면서(側目而) 보고(視), 귀를 기울여서(傾耳而) 듣고(聽); 형수는(嫂) 뱀처럼 기어(蛇行匍) 엎드려서(伏), 네 번 절하고(四拜) 스스로 꿇어 앉아(自跪而) 사죄했다(謝).
蘇秦曰: “嫂, 何前倨而後卑也?”
소진이(蘇秦) 말했다(曰): “형수는(嫂), 어찌(何) 전에는(前) 거만했는데(倨) 이후에는(而後) 비굴합니까(卑也)?”
嫂曰: “以季子之位尊而多金.”
형수가 말했다(嫂曰): “시숙의(季子之) 지위가 높고(位尊而) 돈이 많기(多金) 때문입니다(以).”
蘇秦曰: “嗟乎! 貧窮則父母不子, 富貴則親戚畏懼.
소진이 말했다(蘇秦曰): “아아(嗟乎)! 가난하면(貧窮則) 부모가(父母) 자식으로 여기지 않고(不子), 부귀하면(富貴則) 친척이(親戚) 두려워하는구나(畏懼).
人生世上, 勢位富貴, 蓋可忽乎哉!”
인생(人生) 한 세상에(世上), 권세(勢) 지위(位)와 부귀가(富貴), 어찌(蓋) 소홀할 수 있겠는가(可忽乎哉)!”
蘇秦始將連橫說秦惠王曰: “大王之國, 西有巴‧蜀‧漢中之利, 北有胡貉‧代馬之用, 南有巫山‧黔中之限, 東有肴‧函之固. 田肥美, 民殷富, 戰車萬乘, 奮擊百萬, 沃野千里, 蓄積饒多, 地勢形便, 此所謂天府, 天下之雄國也. 以大王之賢, 士民之衆, 車騎之, 兵法之敎, 可以幷諸侯, 呑天下, 稱帝而治. 願大王少留意, 臣請奏其效.” 秦王曰: “寡人聞之:毛羽不豐滿者, 不可以高飛; 文章不成者, 不可以誅罰. 道德不厚者, 不可以使民, 政敎不順者, 不可以煩大臣. 今先生儼然不遠千里而庭敎之, 願以異日.” 蘇秦曰:
“臣固疑大王之不能用也. 昔者, 神農伐補遂, 黃帝伐涿鹿而禽蚩尤, 堯伐驩兜, 舜伐三苗, 禹伐共工, 湯伐有夏, 文王伐崇, 武王伐紂, 齊桓任戰而伯天下. 由此觀之, 惡有不戰者乎? 古者, 使車轂擊馳, 言語相結, 天下爲一, 約從連橫, 兵革不藏, 文士並飭, 諸侯亂惑, 萬端俱起, 不可勝理, 科條旣備, 民多僞態, 書策稠濁, 百姓不足, 上下相愁, 民無所聊, 明言章理, 兵甲愈起, 辯言偉服, 戰攻不息, 繁稱文辭, 天下不治, 舌弊耳聾, 不見成功, 行義約信, 天下不親. 於是, 乃廢文任武, 厚養死士, 綴甲厲兵, 效勝於戰場. 夫徒處而致利, 安坐而廣地, 雖古五帝‧三王‧五伯, 明主賢君, 常欲坐而致之, 其勢不能, 故以戰續之.
寬則兩軍相攻, 迫則杖戟相橦, 然後可建大功. 是故兵勝於外, 義强於內, 威立於上, 民服於下. 今欲幷天下, 凌萬乘, 詘敵國, 制海內, 子元元, 臣諸侯, 非兵不可. 今之嗣主, 忽於至道, 皆惛於敎, 亂於治, 迷於言, 惑於語, 沈於辯, 溺於辭. 以此論之, 王固不能行也.” 說秦王書十上而說不行. 黑貂之裘弊, 黃金百斤盡, 資用乏絶, 去秦而歸. 羸縢履蹻, 負書擔橐, 形容枯槁, 面目犁黑, 狀有歸(愧)色. 歸至家, 妻不下紝, 嫂不爲炊, 父母不與言. 蘇秦喟歎曰: “妻不以我爲夫, 嫂不以我爲叔, 父母不以我爲子, 是皆秦之罪也.” 乃夜發書, 陳篋數十, 得太公陰符之謀, 伏而誦之, 簡練以爲揣摩. 讀書欲睡, 引錐自刺其股, 血流至足. 曰:
“安有說人主不能出其金玉錦繡, 取卿相之尊者乎?” 期年揣摩成, 曰: “此眞可以說當世之君矣!” 於是乃摩燕烏集闕, 見說趙王於華屋之下, 抵掌而談. 趙王大悅, 封爲武安君. 受相印, 革車百乘, 綿繡千純, 白壁(璧)百雙, 黃金萬溢, 以隨其後, 約從散橫, 以抑强秦. 故蘇秦相於趙而關不通. 當此之時, 天下之大, 萬民之衆, 王侯之威, 謀臣之權, 皆欲決蘇秦之策. 不費斗糧, 未煩一兵, 未戰一士, 未絶一絃, 未折一矢, 諸侯相親, 賢於兄弟. 夫賢人在而天下服, 一人用而天下從. 故曰:式於政, 不式於勇; 式於廊廟之內, 不式於四境之外. 當秦之隆, 黃金萬溢爲用, 轉轂連騎, 炫熿於道, 山東之國, 從風而服, 使趙大重. 且夫蘇秦特窮巷掘門‧桑戶棬樞之士耳, 伏軾撙銜, 橫歷天下, 廷說諸侯之王, 杜左右之口, 天下莫之能伉. 將說楚王, 路過洛陽, 父母聞之, 淸宮除道, 張樂設飮, 郊迎三十里. 妻側目而視, 傾耳而聽; 嫂蛇行匍伏, 四拜自跪而謝. 蘇秦曰: “嫂, 何前倨而後卑也?” 嫂曰:
“以季子之位尊而多金.” 蘇秦曰: “嗟乎! 貧窮則父母不子, 富貴則親戚畏懼. 人生世上, 勢位富貴, 蓋可忽乎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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