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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전국책(戰國策)

[전국책(戰國策) 卷2 서주책(西周策) 031] 진나라가 저리질을 주나라에 들여보내다 / 진령저리질이차백승입주(秦令樗里疾以車百乘入周)

by ഗൗതമബുദ്ധൻ 2023.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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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리질(樗里疾)은 秦 惠王의 이복 동생. 이름은 疾. 渭水 남쪽 樗里에 살았기 때문에 樗里疾이라 한다. 滑稽를 잘하고 지혜가 많아서 智囊이라고 불렸으며 趙‧魏‧楚를 공벌한 공로로 左相이 되었다. 《史記》 〈樗里子甘茂列傳〉에 “감무가 韓나라를 공격하여 宜陽을 빼앗고는 樗里子를 시켜 수레 1백 승으로 周나라에 들어가게 했다.[甘茂攻韓 拔宜陽 使樗里子以車百乘入周]”라고 하였다. 이때는 周 赧王 5년(B.C.310), 혹은 B.C.308년, 혹 B.C.307년으로 보기도 한다.

 

秦令樗里疾以車百乘入周, 周君迎之以卒甚敬. 楚王怒, 讓周以其重秦客. 游騰謂楚王曰: “昔智伯欲伐厹由, 遺之大鍾, 載以廣車, 因隨入以兵, 厹由卒亡, 無備故也. 桓公伐蔡也. 號言伐楚, 其實襲蔡. 今秦者, 虎狼之國也, 兼有呑周之意, 使樗里疾以車百乘入周, 周君懼焉, 以蔡‧厹由戒之, 故使長兵在前, 强弩在後, 名曰衛疾, 而實囚之也. 周君豈能無愛國哉? 恐一日之亡國, 而憂大王.” 楚王乃悅.

 

秦令樗里疾以車百乘入周, 周君迎之以卒甚敬.

진나라가(秦) 저리질로 하여금(令樗里疾) 백승의 수레로(以車百乘) 주나라에 들어가도록 하니(入周), 주나라 임금이(周君) 병졸로(以卒)) 그를 맞이하면서(迎之) 매우 공경했다(甚敬).


楚王怒, 讓周以其重秦客. 游騰謂楚王曰:

초왕이(楚王) 노하여(怒), 주나라가(周) 진나라 손님을(秦客) 중하게 대접한 것을(以其重) 꾸짖자(讓). 유등(游騰)이 초왕에게(楚王) 말했다(謂曰):


“昔智伯欲伐厹由, 遺之大鍾, 載以廣車, 因隨入以兵, 厹由卒亡, 無備故也.

“옛날(昔) 지백이(智伯) 구유를(厹由) 정벌하려고(欲伐), 큰 종을(大鍾) 구유에 보내면서(遺之), 큰 수레로(以廣車) 싣고(載), 잇달아(因) 병사들로(以兵) 들어갈 때(入) 따르게(隨) 하여, 구유가(厹由) 마침내 망했으니(卒亡), 대비가 없었기(無備) 때문입니다(故也).


桓公伐蔡也, 號言伐楚, 其實襲蔡.

환공이(桓公) 채나라를(蔡) 정벌할 때(伐也), 내세운 말은(號) 초나라를 정벌한다고(伐楚) 말했지만(言), 그 실상은(其實) 채나라를 습격했습니다(襲蔡).


今秦者, 虎狼之國也, 兼有呑周之意, 使樗里疾以車百乘入周,

지금(今) 진나라가(秦者), 호랑이와 늑대 같은(虎狼之) 나라이니(國也), 더불어(兼) 주나라를 삼키려는(呑周之) 뜻이(意) 있어(有), 저리질로 하여금(使樗里疾) 전차 100 대로(以車百乘) 주나라에 들어가도록(入周) 했고,

 

周君懼焉, 以蔡‧厹由戒之, 故使長兵在前, 强弩在後, 名曰衛疾, 而實囚之也.

주나라 임금이(周君) 두려워하는(懼焉) 것은, 채나라와 구유의 일로(以蔡‧厹由) 경계를 삼았으니(戒之), 그러므로(故) 장병들로 하여금(使長兵) 앞에 있도록(在前) 하고, 간오를(强弩) 뒤에 있도록(在後) 하여, 명분을 말하기를(名曰) 호위한다고 했지만(衛疾, 而) 사실은(實) 그를 가둔 것이다(囚之也).

 

周君豈能無愛國哉? 恐一日之亡國, 而憂大王.”

주나라 임금이(周君) 어찌(豈) 나라를 사랑함이(愛國) 없을 수 있겠습니까(能無哉)? 하루아침에(一日之) 나라가 망하고 나면(亡國, 而) 대왕을 걱정시킬까(憂大王) 두렵습니다(恐).”

 

楚王乃悅.

초왕이(楚王) 이에(乃) 기뻐했다(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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