護左都水使者光祿大夫臣向言:
호좌도수사(護左都水使) 이면서(者) 광록대부(光祿大夫)인 신(臣) 유향(向)이 아룁니다(言):
所校中《戰國策》書, 中書餘卷, 錯亂相糅莒. 又有國別者八篇, 少不足. 臣向因國別者, 略以時次之, 分別不以序者以相補, 除復重, 得三十三篇. 本字多誤脫為半字, 以趙為肖, 以齊為立, 如此字者多. 中書本號, 或曰《國策》, 或曰《國事》, 或曰《短長》, 或曰《事語》, 或曰《長書》, 或曰《修書》. 臣向以為戰國時, 游士輔所用之國, 為之策謀, 宜為《戰國策》. 其事繼春秋以後, 訖楚·漢之起, 二百四十五年間之事, 皆定以殺青, 書可繕寫.
전국책(戰國策)이란 책(書)을 교열하고 맞춘(校中) 것이(所), 서고에(中書) 남은(餘) 서적으로(卷), 간책이 뒤섞여 어수선하게(錯亂) 서로(相) 섞여 있었습니다(糅莒). 또(又) 나라별로(國別) 있는(有) 것이(者) 8 편이지만(八篇), 다소(少) 부족했습니다(不足). 신(臣) 유향이(向) 나라별로 구분된 것을(國別者) 바탕으로(因), 간략하게(略) 시대에 따라(以時) 그것을 차례 짓고(次之), 분별하여(分別) 순서에 맞지 않은 것은(不以序者) 그것으로(以) 서로 보완하여(相補), 중복을 없애고(除復重), 33 편을 얻었습니다(得三十三篇). 본래(本) 글자에(字) 오탈자와(誤脫) 반자 된(為半字) 것이 많아서(多), 조나라를(以趙) 초로(為肖), 제를(以齊) 립으로 하여(為立), 이와 같은 글자가(如此字者) 많았습니다(多). 서고에서(中書) 본래 제목은(本號), 국책이라고도 하고(或曰《國策》), 국사라고도 하고(或曰《國事》), 단장이라고도 하고(或曰《短長》), 사어라고도 하고(或曰《事語》), 장서라고도 하고(或曰《長書》), 수서라고도 했습니다(或曰《修書》). 신(臣) 유향은(向) 전국시대에(戰國時), 유세하는 선비가(游士) 자기를 써주는(所用之) 나라를(國) 돕고(輔), 그들을 위하여(爲之) 책략을 꾸몄으니(策謀), 마땅히(宜) 전국책이 된다고(爲《戰國策》) 생각했습니다(以爲). 그(其) 일이(事) 이어져(繼) 춘추 이후로(春秋以後), 처나라와 한나라가(楚·漢之) 일어나는 때(起)에 이르러(訖), 245년간의 일이니(二百四十五年間之事), 모두(皆) 정해서(定以) 탈고하고(殺青), 책을(書) 바로잡아 베낄 수 있었습니다(可繕寫).
敍曰: 周室自文·武始興, 崇道德, 隆禮義, 設辟雍泮宮庠序者教, 陳禮樂咸弦歌移風之化. 敘人倫, 正夫婦, 天下莫不曉然. 論孝悌之義, 惇篤之行, 故仁義之道滿乎天下, 卒致之刑錯四十餘年. 遠方慕義, 莫不賓服, 雅頌歌曰, 以思其德. 下及康·昭之後, 雖有衰德, 其綱紀尙明.
펼쳐서 말하자면(敍曰): 주나라(周) 왕실이(室) 문왕과 무왕부터(自文·武) 비로소 흥하여(始興), 도덕을 높이고(崇道德), 예의를 융성하게 하여(隆禮義), 벽옹(辟雍, 주나라 때 나라에 설치한 대학)과 반궁(泮宮, 성균관과 문묘를 아울러 이르던 말), 상서란(庠序, 학교) 것을(者) 설치하여(設) 가르치고(敎), 예악을 퍼트리고(陳禮樂) 현가를 두루 미치게 하여(咸弦歌) 풍속을 바꾸는(移風之) 교화를(化) <실천했습니다>. 인륜을 펼치고(敍人倫), 부부를 바르게 하고(正夫婦), 천하에(天下) 깨닫지 못하는(不曉) 사람이 없었습니다(莫然). 효제의 뜻과(孝悌之義), 돈독한(惇篤之) 행실을(行) 의논하고(論), 그러므로(故) 인의의(仁義之) 도가(道) 천하에(乎天下) 가득하여(滿), 마침내(卒) 이른 것이(致之) 형벌을 버려둠이(刑錯, 형벌을 집행하지 않음) 40여 년이었습니다(四十餘年). 멀리서도(遠方) 의를 사모하고(慕義), 빈복하지 않는(不賓服, 세력이약한 나라가 세력이 강한 나라에 공물을 바치고 복종함) 사람이 없으면(莫), 아송의(雅頌) 노래에 이르기를(歌曰), 그것으로(以) 그 덕을(其德) 사모했습니다(思). 뒤에(下) 강왕과 소왕에(康·昭) 이른(及之) 뒤로(後), 비록(雖) 덕이 쇠함이(衰德) 있었지만(有), 그(其) 강기는(綱紀, 나라의 바탕이 되는 질서) 여전히(尙) 밝았습니다(明).
及春秋時, 已四五百載矣, 然其餘業遺烈, 流而未滅. 五伯之起, 尊事周室. 五伯之後, 時君雖無德, 人臣輔其君者, 若鄭之子產, 晉之叔向, 齊之晏嬰, 挾君輔政, 以并立于中國, 猶以義相支持, 歌說以相感, 聘覲以相交, 期會以相一, 盟誓以相救. 天子之命, 猶有所行. 會向左之國, 猶有所恥. 效果得有所依, 百姓得有所息.
춘추 시대에(春秋時) 이르러(及), 이미(已) 사오백 년이(四五百) 지났고(載矣), 그러나(然) 그 나머지 공업은(其餘業) 뜨겁게 남아(遺烈), 흘러서(流而) 없어지지 않았습니다(未滅). 오백이(五伯之, 오패) 일어났지만(起), 주실을(周室) 높이고 섬겼습니다(尊事). 오백의(五伯之) 뒤에(後), 당시에(時) 임금이(君) 비록(雖) 덕이 없었지만(無德), 신하들이(人臣) 그 임금을(其君) 보좌한 것이(輔者), 정나라의(鄭之) 자산(子產), 진나라의(晉之) 숙향(叔向), 제나라의(齊之) 안영(晏嬰) 같은 사람이(若), 임금을 끼고(挾君) 정사를 보좌해서(輔政, 以) 중국에(于中國) 함께 섰으면서도(并立), 오히려(猶) 의로써(以義) 서로(相) 지지하고(支持), 노래로(歌說以) 서로 느끼고(相感), 빙례와 조근으로(聘覲以) 서로 교제하고(相交), 회합으로(期會以) 서로 하나 되어(相一), 맹세하여(盟誓以) 서로 구했습니다(相救). 천자의(天子之) 명이(命), 오히려(猶) 행해지는 것이(所行) 있었습니다(有). 會向左之國, 猶有所恥. 效果得有所依, 百姓得有所息.
故孔子曰: 能以禮讓為國乎何有?周之流化, 豈不大哉!及春秋之後, 眾賢輔國者既沒, 而禮義衰矣. 孔子雖論《詩》·《書》, 定《禮》·《樂》, 王道粲然分明, 以匹夫無勢, 化之者七十二人而已, 皆天下之俊也, 時君莫尚之. 是以王道遂用不興. 生物曰: 非威不立, 非勢不行.
그러므로(故) 공자가 말하기를(孔子曰): 예와 양으로(以禮讓) 나라를(國) 다스린다면(能爲乎)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何有)? 주나라의(周之) 교화가(流化), 어찌(豈) 크지 않겠는가(不大哉)! 춘추시대의(春秋之) 뒤에 이르러(及後), 많은 성현이(衆賢) 나라를 보좌한 것이(輔國者) 이미 사라져서(旣沒, 而) 예의가(禮義) 쇠퇴했다(衰矣). 공자가(孔子) 비록(雖) 시서와(《詩》·《書》)를 논하고(論), 예악을 정해서(定《禮》·《樂》), 왕도가(王道) 찬연하고(粲然) 분명하지만(分明), 필부로써(以匹夫) 세력이 없어서(無勢), 교화된 사람이(化之者) 72명뿐이니(七十二人而已), 모두(皆) 천하의(天下之) 준재로(俊也), 당시(時) 임금 중에(君) 그들을 숭상하지(尙之) 않는 사람이 없었다(莫). 이 때문에(是以) 왕도가(王道) 마침내(遂) 쓰여(用) 일어나지 않았습니다(不興). 生物曰: 위엄이 없으면(非威) 서지 않고(不立), 세력이 없으면(非勢) 행해지 않는다(不行).
仲尼旣沒之後, 田氏取齊, 六卿分晉, 道德大廢, 夏商失序. 至秦孝公, 圈禮讓而貴戰爭, 棄仁義而用詐譎, 茍以取強因而矣. 夫篡盜之人, 雷達為侯王; 詐譎之國, 興立為強. 是以傳相方向效, 後生師之, 遂相吞滅并大兼小, 暴師經歲, 流血滿野, 諸子不相親, 兄弟不相親, 夫婦離散, 莫保其命, 泯然道德絕矣.
중니가(仲尼) 이미(旣) 죽은 뒤에(沒之後), 전씨가(田氏) 제나라를 취하고(取齊), 육경이(六卿) 진나라를 쪼개고(分晉), 도덕이(道德) 완전히 없어지고(大廢), 천하가(夏商) 차례를 잃었습니다(失序). 진효공에(秦孝公) 이르러(至), 예양을(禮讓) 우리에 가두고(圈而) 전쟁을(戰爭) 귀하게 여겨(貴), 인의를(仁義) 버리고(棄而) 속임수를 써서(用詐譎), 단지(苟) 그것으로(以) 강함을 취할(取强) 뿐이었습니다(已而矣). 대체로(夫) <나라를> 빼앗고 훔친(篡盜之) 사람이(人), 빠르게(雷) 제후나 왕이(侯王) 되기에 이르렀고(達爲); 속임을 쓰는(詐譎之) 나라가(國), 일어나서 서서(興立) 강자가 되었습니다(爲强). 이 때문에(是以) 서로 방법과 효과를 전하고(傳相方向) 본받아서(效), 나중에(後) 군사를 일으켜(生師之), 마침내(遂) 서로(相) 삼키고(呑) 멸망시켜(滅) 큰 나라를 아우르고 작은 나라를 겸병해서(倂大兼小), 포악한 군대가(暴師) 해를 넘기고(經歲), 흐르는 피가(流血) 들에 가득하고(滿野), 부자가(父子) 서로 친하지 못하고(不相親), 형제가(兄弟) 서로 친하지 못하고(不相親), 부부가(夫婦) 떨어져 흩어지고(離散), 그 목숨을(其命) 보전한 사람이 없으니(莫保), 자취없이(泯然) 도덕이 끊어졌습니다(道德絕矣).
晚世益甚, 萬乘之國七, 千乘之國五, 敵侔爭權, 蓋為戰國. 貪饕無恥, 竟進無厭; 國異政教, 各自制斷; 上無天子, 下無方伯; 力功爭強, 勝者為右; 兵革不休, 詐偽并起. 當此之時, 雖有道德, 不得施謀; 有設之強, 負阻而恃固; 連與交質, 重約結誓, 以守其國. 故孟子·孫卿儒術之士, 棄圈于世, 而游說權謀之徒, 見貴于俗. 是以蘇秦·張儀·公孫衍·陳軫·代·厲之屬, 生從橫短長之說, 左右傾側. 蘇秦為從, 張儀為橫; 橫則秦帝, 從則楚王; 所在國重, 所去國輕.
然當此之時, 秦國最雄, 諸侯方弱, 蘇秦結之, 時六國為一, 以儐背秦. 秦人恐懼, 不敢窺兵于關中, 天下不交兵者, 二十有九年. 然秦國勢便形利, 權謀之士, 咸先馳之. 蘇秦初欲橫, 秦弗用, 故東合從. 及蘇秦死後, 張儀連橫, 諸侯聽之, 西向事秦. 是故始皇因四塞之固, 據崤·函之阻, 跨隴·蜀之饒, 聽眾人之策, 乘六世之烈, 以蠶食六國, 兼戰後, 并有天下. 盞于謀詐之弊, 終無信篤之誠無道德之教·仁義之化, 以綴天下之心. 任刑罰以為治, 信小術以為道. 遂燔燒詩書, 坑殺儒士, 上小堯·舜, 下邈三王.
二世愈甚, 惠不下施, 情不上達; 君臣相疑, 骨肉相疏; 化道淺薄, 綱紀壞敗; 民不見義, 而懸于不寧. 撫天下十四歲, 天下大潰, 詐偽之弊也. 其比王德, 豈不遠哉!孔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夫使天下有所恥, 故化可致也. 茍以詐偽偷活取容, 字上為之, 何以率下?秦之敗也, 不亦宜乎!
戰國之時, 君德淺薄, 為之謀策者, 不得不因勢而為資, 據時而為. 故其辯, 扶急持傾, 為一切之權, 雖不可以臨國教化, 兵革救急之勢也. 皆高才秀士, 度時君之所能行, 出奇策異智, 專危為安, 運亡為存, 亦可喜, 皆可觀. 護左都水使者光祿大夫臣向所校《戰國策》《書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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