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 故曰: “苟不至德(고왈 구부지덕), 至道不凝焉(지도부응언).”
그러므로 말하기를: 진실로(苟) 지극한 덕이(至德) 아니라면(不), 지극한 도가(至道) 이루어지지(凝, 엉기다) 않는다(不焉).
至德, 謂其人. 至道, 指上兩節而言. 凝, 聚也, 成也.
지극한 덕이 있는 사람은 <앞 글의> 그 사람을 말한다. 지극한 도는, 앞의 두 마디를 가리킨다. 응(凝)은, 모이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故君子尊德性而道問學(고군자존덕성이도문학), 致廣大而盡精微(지광대이진정미), 極高明而道中庸(극고명이도중용),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 敦厚以崇禮(돈후이숭례)).
그러므로 군자는 덕성(德性)을 높이지만(尊) 학문으로(問學) 말미암고(道, 방법으로 삼아, 말하고), 광대함(廣大)에 이르러서(致而) 정미함(精微)을 다하고(盡), 고명함을(高明) 극진하게 해서(極而) 중용을 따르고(道中庸), 옛 것을 익혀서(溫故而) 새로운 것을 알고(知新), <성실함을> 돈독하고 두텁게 하여(敦厚以) 예를 높인다(崇禮).
- 尊德性而道問學: 주자는 '道'를 '말미암다'로 풀었다. 하지만 글자 그대로 '말하다'로 풀어도 해석이 된다. (대학중용강설, 이기동)
尊者, 恭敬奉持之意. 德性者, 吾所受於天之正理. 道, 由也.
높임(尊)은, 공경하여 받들어 지킨다는 뜻이다. 덕성이란, 내가 하늘에서 받은 바른 이치다. 도(道)는 말미암음이다.
溫, 猶燖溫之溫. 謂故學之矣, 復時習之也. 敦, 加厚也.
온(溫)은, 불에 달궈 따뜻하게 함(燖溫)의 溫과 같다. 일부러 그것을 배우고, 다시 때때로 익히는 것을 말한다. 돈은, 두터움(성실함)을 더하는 것이다.
尊德性, 所以存心而極乎道體之大也. 道問學, 所以致知而盡乎道體之細也.
덕성을 높이는 것(尊德性)은, 마음에 보존하여 도체의 큰 것을 극진하게 하는 것이다. 학문을 따름(道問學)은, 앎을 지극하게 하여 도체의 세밀한 것을 다하는 것이다.
二者, 修德凝道之大端也.
둘은, 덕을 닦고 도를 이루는 큰 단서다.
不以一毫私意自蔽, 不以一毫私欲自累, 涵泳乎其所已知, 敦篤乎其所已能, 此皆存心之屬也.
한 터럭의 사사로운 생각으로 스스로 가리지 않고, 한 터럭의 사사로운 욕심으로 스스로 해치지 않고, 자기가 아는 것에 들어가 헤엄치고 놀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더욱 두텁게 하게 하는 것이, 이것이 모두 마음을 보존하는 따위의 일이다.
析理則不使有毫釐之差, 處事則不使有過不及之謬, 理義則日知其所未知, 節文則日謹其所未謹, 此皆致知之屬也.
이치를 분석하면 작은 차이도 나지 않도록 하고, 일을 처리하면 과불급의 잘못이 있지 않게 하며, 이의에 관해서는 매일 모르던 것을 알고, 절문(절도와 문채)에 관해서는 삼가지 못하던 것을 매일 삼가는 것이, 이것이 모두 지혜를 극진하게 하는 따위다.
蓋非存心無以致知, 而存心者, 不可以不致知.
대체로 마음을 보존하지 않으면 앎을 지극하게 할 수 없고, 마음을 보존한 사람이라도, 앎을 지극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故此五句, 大小相資, 首尾相應, 聖賢所示入德之方, 莫詳於此.
이 다섯 구절은, 크고 작음이 서로 의지하고(資), 머리와 꼬리가 서로 호응하여, 성현이 덕에 들어가는 방법을 보여준 것이, 이보다 더 자세한 것이 없다.
學者宜盡心焉.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마음을 다해야 한다.
是故居上不驕(시고거상불교), 爲下不倍(위하불배).
그러므로(是故) 윗자리에 있어도(居上) 교만하지 않고(不驕), 아랫사람이 되어서(爲下) <윗사람을> 배반하지 않는다(不倍).
國有道(국유도), 其言足以興(기언족이흥); 國無道(국무도), 其黙足以容(기묵족이용).
나라에 도가 있으면, 그의 말이 <자신을> 일으킬 수 있고(足以興), 나라에 도가 없으면, 그의 침묵이 용납될 수 있다(足以容).
詩曰: “旣明且哲, 以保其身.” 其此之謂與! (시왈 기명의석 이보기신 기차지위여)
시에 이르기를: 이미 밝고 지혜로워서, 자기 몸을 보존할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興, 謂興起在位也. 詩, 「大雅烝民」之篇.
흥(興)은, 떨쳐 일어나서 자리에 있는 것이다. 시는, 대아 증민편이다.
右第二十七章. 言人道也.
이상은 제27장이다. 인도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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