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왕조의 대학 존숭
오대의 난을 평정하고 중국을 통일한 송왕조는 유학 존중의 풍조를 일으켰다. 특히, 송왕조의 천자가 진사에 합격한 등제자에게 연회에서 '대학'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대학은 새롭게 정비한 송 왕조에서 천자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옹호하는 제왕학의 상징이었다.
자치통감을 지은 사마광은 경학자는 아니었지만 후대의 주희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주희는 사마광에게 강렬한 명분론, 예치의 이념, 관료의 도덕성을 배웠다. 자치통감은 인륜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 관료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역사적 사례에서 찾은 통사이다. 사회 제도의 개혁을 통한 치세가 아니라 군주의 내면적 덕성 함양을 통한 '예치'와 '인정'을 강조하는 사마광의 사상적 경향은 왕안석의 신법을 반대한 그의 보수성과도 관련이 있다. 주희의 주리적 경향성과 '존천리거인욕'의 리고리즘은 사마광을 계승한 것이다.
사마광은 '예기禮記'에서 '대학大學'을 분리하고 주석을 단 최초의 인물이다. 주희가 '평천하平天下'를 사대부 개인의 수양 덕목으로 이해한 반면, 사마광은 '평천하平天下'를 제왕의 덕목으로 이해했다. 사마광의 대학 주석은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격물格物'에 대한 그의 견해를 담은 '치지재격물론致知在格物論'은 현재 전해지고 있다. (대학학기 한글 역주, 김용옥)
致知在格物論
천성이 선하지만 악인이 많은 까닭
人之情, 莫不好善而惡惡, 慕是而羞非. 然善且是者蓋寡, 惡且非者實多, 何哉? 皆物誘之也, 物迫之也.
사람의(人之) 정이(情), 선을 좋아하고(好善而) 악을 미워하지(惡惡) 않음이(不) 없고(莫), 옳은 것을(是) 흠모하고(慕而) 그른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羞非). 그러나(然) 선하고(善且) 바른 사람은(是者) 대체로 적고(蓋寡), 악하고(惡且) 그른 사람은(非者) 실제로 많으니(實多), 어째서인가(何哉)? 모두(皆) 물이(物) 그를 유혹하고(誘之也), 물이(物) 그를 핍박함이다(迫之也).
桀ㆍ紂, 亦知禹ㆍ湯之爲聖也, 而所爲與之反者, 不能勝其欲心故也; 盜跖, 亦知顔ㆍ閔之爲賢也而, 所爲與之反者, 不能勝其利心故也.
걸왕과(桀) 주왕도(紂), 또한(亦) 우왕과(禹) 탕왕이(湯之) 성인 되심을(爲聖) 알았지만(知也, 而) 그들과 더불어(與之) 반대로(反) 한(爲) 것은(所者), 그(其) 욕심을(欲心) 이길(勝) 수 없었기(不能) 때문이고(故也); 도척도(盜跖), 또한(亦) 안연과(顔) 민자건이(閔之) 현인이 됨을(爲賢) 알았지만(知也而), 그들과 더불어(與之) 반대로 한(爲反) 것은(所者), 그(其) 이기심을(利心) 이길(勝) 수 없었기(不能) 때문이다(故也).
不軌之民, 非不知穿窬ㆍ探囊之可羞也, 而冒行之, 驅於饑寒故也;
도리를 지키지 않는(不軌之) 백성이(民), 좀도둑질과(穿窬)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探囊之) 부끄럽다는 것을(可羞) 알지 못하는(不知) 것이 아니지만(非也, 而) 위험을 무릅쓰고(冒) 행하는 것은(行之), 배고픔과 추위에(於饑寒) 몰리기(驅) 때문이고(故也);
失節之臣, 亦非不知反君事讎之可愧也, 而忍處之, 逼於刑禍故也. 況於學者, 豈不知仁義之美簾恥之尙哉?
절개를 잃는(失節之) 신하도(臣), 또한(亦) 임금을 배반하고(反君) 원수를 섬기는 것이(事讎之) 부끄러울 수 있음을(可愧) 모르는 것이(不知) 아니지만(非也, 而) 차마(忍) 그것에 처하는(處之) 것은, 형벌에(於刑禍) 핍박을 받기(逼) 때문이다(故也). 하물며(況) 학자에게 있어서(於學者), 어찌(豈) 인의(仁義之) 아름다움과(美) 염치의(簾恥之) 고상함을(尙) 알지 못하겠는가(不知哉)?
斗升之秩錙銖之利誘於前, 則趨之如流水, 豈能安展禽之黜樂顔子之貧乎?
몇 말의(斗升之, 작은) 녹봉과(秩) 아주 가벼운(錙銖之) 이익이(利) 눈앞에서(於前) 유혹하면(誘, 則) 그것을 쫒는 것이(趨之) 흐르는 물과(流水) 같으니(如), 어찌(豈) 전금의(展禽之, 유하혜)의 내침을(黜) 편안히 여기고(安) 안자의 가난함을(顔子之貧) 즐길(樂) 수 있겠는가(能乎)?
動色之怒毫末之害迫於後, 則畏之如烈火, 豈能守伯夷之餓, 徇比干之死乎.
안색이 움직이는(動色之) <상관의> 노여움이나(怒) 아주 적은(毫末之, 털끝의) 해가(害) 뒤에서(於後) 닥쳐오면(迫, 則) 그것을 두려워함이(畏之) 맹렬한 불길처럼(如烈火) 하니, 어찌(豈) 백이의 굶주림을(伯夷之餓) 지키고(守), 비간의 죽음을(比干之死) 쫒을(徇) 수 있겠는가(能乎).
如此則何暇仁義之思簾恥之顧哉? 不惟不思與不顧也, 抑亦莫之知也.
이와 같다면(如此則) 어느 겨를에(何暇) 인의를 생각하고(仁義之思) 염치를 돌아보겠는가(簾恥之顧哉)? 생각하지 못하고(不思與) 돌아보지 못하는 것(不顧) 뿐만 아니라(不惟也), 도리어(抑) 또한(亦) 그것을(之) 알지 못하는 것이다(莫知也).
譬如逐獸者不見泰山, 彈雀者不覺露之霑衣也, 所以然者物蔽之也故.
비유하자면(譬) 짐승을 쫓는(逐獸) 사람은(者) 태산을(泰山) 보지 못하고(不見), 새를 쏘는(彈雀) 사람은(者) 이슬이(露之) 옷을 적시는 것을(霑衣) 깨닫지 못하는(不覺) 것과 같으니(如也), 그 이유는(所以然者) 물이(物) 그를(之) 덮기(蔽也) 때문이다(故).
사마광은 사람의 정이 도덕적 숭고함을 모를 리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정이 도덕적 숭고함을 실천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부도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도덕한 짓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욕을 자극하는 물이다. 송유가 말하는 '외물外物'의 부정적인 뜻이 사마광에게서도 드러난다. 이렇게 되면 '격물格物'을 해석할 때의 '물物'은 부정적인 대상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대학학기 한글 역주, 김용옥)
선한 천성을 지키는 사람
水誠淸矣, 泥沙汩之, 則俛而不見其影; 燭誠明矣, 擧掌翳之, 則咫尺不辨人眉目, 況富貴之汩其智, 貧賤之翳其心哉.
물이(水) 비록(誠) 맑지만(淸矣), 진흙과 모래가(泥沙) 그것에 흐르면(汩之, 則) 고개를 숙여도(俛而) 그 그림자를(其影) 보지 못하고(不見); 촛불이(燭) 비록(誠) 밝아도(明矣), 손바닥을 들어(擧掌) 그것을 덮으면(翳之, 則) 가까운(咫尺, 한 자 거리의 가까운) 사람의(人) 용모(眉目, 눈썹과 눈)를 구별할 수 없으니(不辨), 하물며(況) 부귀가(富貴之) 그 지혜를(其智) 흐리고(汩), 빈천이(貧賤之) 그 마음을(其心) 가린다면(翳) 어떡하겠는가(哉).
惟好學君子爲不然已之道. 誠善也是也, 雖茹之以藜藿如粱肉, 臨之以鼎鑊如茵席.
오직(惟) 배움을 좋아하는(好學) 군자가(君子) 그렇지 않을 뿐인(不然已之) 도를(道) 실천한다(爲). 진실로(誠) 선한 것이(善也) 옳다면(是也), 비록(雖) 변변치 못한 반찬이라도(以藜藿) 훌륭한 음식(粱肉)처럼(如) 그것을 먹고(茹之), 솥에 삶아지는 형벌로도(以鼎鑊) 방석처럼(如茵席) 그것에 임한다(臨之).
誠惡也非也, 雖位之以公相如塗泥, 賂之以萬金如糞壤, 如此則視天下之事, 善惡是非, 如數一二如辨黑白, 如日之出無所不照, 如風之入無所不通, 洞然四達, 安有不知者哉. 所以然者物莫之蔽故也.
진실로(誠) 악한 것이(惡也) 그르다면(非也), 비록(雖) 지위가(位之) 재상의 자리라도(以公相) 길바닥의 진흙처럼(如塗泥) 여기고, 뇌물이(賂之) 만금이라도(以萬金) 더러운 흙처럼(如糞壤) 여기니, 이와 같다면(如此則) 천하의 일의(天下之事), 선악과(善惡) 시비를(是非) 보는(視) 것이, 하나 둘을(一二) 세는 것 같고(如數) 흑백을(黑白) 가리는 것 같고(如辨), 해가(日之) 나와서(出) 비추지 않는 곳이(所不照) 없는(無) 것과 같고(如), 바람이(風之) 들어와(入) 통하지 않는 곳이(所不通) 없는 것과 같아서(如無), 환하게(洞然) 사방으로 통달하니(四達), 어찌(安) 알지 못하는 것이(不知者) 있겠는가(有哉). 그 까닭은(所以然者) 물이(物) 그를(之) 덮지 않았기(莫蔽) 때문이다(故也).
앞서 복성서에서 이고가 말한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 '정情' 자체는 악이 아니지만 물의 맑음과 흐림과 같이 상황에 따라 악이 되는 것이다. 물이 진흙과 모래 때문에 흐려지는 것처럼 우리도 욕망에 따라 흐려지고, 그 욕망을 자극시키는 외물은 물을 흐리게 하는 진흙이나 모래와 같다. 이것을 차단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배움'이다. 인간의 도덕적 실천을 '배움'과 연관시키는 점은 맹자보다 순자의 논리와 연속되는 면이 있다.
외물을 막아야 앎이 지극해진다
於是依仁以爲宅, 遵義以爲路, 誠意以行之, 正心以處之, 修身以帥之, 則天下國家何爲而不治哉?
이에(於是) 인에 의지해서(依仁以) 집을 삼고(爲宅), 의를 따라서(遵義以) 길을 삼으며(爲路), 의를 성실하게 하여(誠意以) 그것을 행하고(行之), 마음을 바르게 하여(正心以) 거기에 처하며(處之, 인의), 몸을 닦아서(修身以) 그것을 앞장서서 하면(帥之, 則) 천하와(天下) 구가가(國家) 어찌(何爲而) 다스려지지 않겠는가(不治哉)?
『大學』曰: “致知在格物.” 格猶扞也禦也. 能扞禦外物然後能知至道矣.
대학에(大學) 이르기를(曰): “앎에 이르는 것은(致知) 물을 격함에(格物) 있다(在).” 격은(格) 한과(扞) 같은 것이니(猶也) 막음이다(禦也). 외물을(外物) 막을(扞禦) 수 있고(能) 나서야(然後) 지극한 도를(至道) 알 수 있다(能知矣).
鄭氏以格爲來, 或者猶未盡古人之意乎. 『溫國文正司馬公文集』
정현이(鄭氏) 격을(以格) 래라고 여겼는데(爲來), 이것은 혹시(或者) 오히려(猶) 고인의(古人之) 뜻을(意) 다하지 못한(未盡) 것이 아니겠는가(乎).
사마광의 대학 해석은 내면적으로 한유의 원도를 잇고 있다. 한유가 '원도'에서 '도와 덕은 허위이고, 인과 의는 정명'이라고 한 것처럼, 유학의 본질은 형이상학적, 우주론적 개념이 아니라 인의라는 형이하학적, 실천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인의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이다(실존적 측면). 이러한 실천의 궁극적 대상은 '천하국가'가 되고, 여기서 '제가', '치국', '평천하'가 이루어진다(사회적 측면).
이 모든 것의 저변에는 '치지재격물'이라는 명제가 자리하고 있다. 사마광은 주희처럼 '치지'와 '격물'이라는 두 개의 조목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유는 대학의 메시지를 '정심과 성의'에서 마치고, 불가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치지재격물'을 말했지만, 사마광은 대학의 메시지를 '치지재격물'까지 확장한 최초의 사람이다. 또한 '격물'의 해석에서 이고는 정현의 주석을 그대로 따랐지만, 사마광은 독자적인 자기 견해를 말해서 이후 '격물' 해석의 논쟁을 촉발시킨 사람이다. (대학학기 한글 역주, 김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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