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는 문장을 지어나가고, 또 그 의미를 파악하는 중요한 시발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문에서 동사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다음 짧은 문장에서 동사를 찾아보자.
(1) a. 無友不如己者. (學而8)
b. 食夫稻, 衣夫錦, 於女安乎? (陽貨21)
c. 君子之德風 (顔淵19)
고대중국어에는 자체적으로 '내가 바로 동사이다.'라고 할 만한 아무런 표지(형태변화)나 단서가 없다. 그렇다면 단어의 '뜻'을 알면 그 기능을 알 수 있을까? 먼저 단어의 뜻을 통해 동사를 유추해 볼 수 있다. 하지만, 無(없다/아니다/하지마라), 友(친구/사귀다), 食(음식/먹다), 衣(옷/입다) 같은 글자는 문맥을 고려하지 않으면 명사인지 동사인지도 확실치 않다.
문장 c를 보면 '군자는(/의) 덕스런 바람(이다)', 또는 '군자의 덕은 바람(이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앞의 해석은 좀 억지스럽고 뒤의 해석이 우리 머릿속에서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다. 그럼 우리말 '바람(이다)'에 해당하는 '風'은 동사인가? 분명 동사는 아니다. '風'을 동사로 해석할 수 있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전성동사 즉, 전통 문법에서 말하는 품사의 활용으로 보는 것이다. 또 하나는, 명사 '바람'앞에 동사에 해당하는 성분(爲나 如와 같은)이 생략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한문은 동사 자체의 외관적 단서가 없기에, 문장에서 동사의 발견이 어렵다. 할 수 있는 것은 문맥 속에서 동사일 가능성이 있는 단어의 선후 관계를 잘 살펴 동사를 확정해내는 것이다. 결국 동사의 발견은 어순 구조 속에서 앞뒤 성분들 간의 관계를 통해 확정하는 길이 최선이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이렇게 어렵사리 동사를 발견했다 해도 해당 문장이 해석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해당 문 장의 단어 뜻을 다 알고, 동사가 뭔지도 아는데 해석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동사의 발견 자체가 답은 아니다. 동사보다 한 계층 높은 곳에서 동사를 작동시키 는 잘 안 보이는 모종의 요소를 발견하는 것이 답이다. 한문해석에서 그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경동사(輕動詞, light verb)'이다. 경동사는 동사보다 한 계층 위에서 동사가 함유하고 있는 여러 의미와 기능성에 대해 '선택적으로 활성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6) a. (子曰:)剛毅木訥近仁. (子路27)
굳세고, 의지가 있고, 질박하고, 말을 조심하는 것은 인에 가깝다.
b. (子曰:)(惟女子與小人爲難養也), 近之則不孙, 遠之則怨. (陽貨25)
그들을 가까이 하면 불손하고, 그들을 멀리하면 원망한다.
a, b에 쓰인 동사 '近'은 같은 글자, 같은 음, 같은 뜻이다. 그러나 해석 부분을 보 자. a는 '가깝다[BE]'로 해석되고, b는 '가깝게 하다[DO]'로 해석된다. 바로 '近'의 위에 서 작동하는 활성화 물질인 경동사가 '近'의 기능을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 결국, 동사의 발견과 아울러 이 동사에 대해 어떤 경동사가 작동하는지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 (한문 해석 공식, 김종호, 2019)
'한문 문법 > 한문 문법 구조 분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문 해석 공식] 1. 한문 해석의 문제 - 1.3. 환원하기의 어려움 (0) | 2022.12.27 |
---|---|
[한문 해석 공식] 1. 한문 해석의 문제 - 1.2. 패턴 분석의 한계 (0) | 2022.12.27 |
[한문 해석 공식: 프롤로그] 사건 의미로 해석하라 (0) | 2022.12.27 |
[한번은 한문 공부 10] 한문에서 가정과 양보를 나타내는 표현: 즉(則), 약(若), 여(如), 이(而), 수(雖), 종(縱) (0) | 2022.10.13 |
[한번은 한문 공부 9] (의문과 반어) 의문사 하(何), 수(誰), 숙(孰), 안*安), 언(焉) (0) | 2022.10.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