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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후배/고문효경(古文孝經)

[고문효경 들어가기 6] 개원시주와 천보중주 그리고 형병의 효경정의와 효경주소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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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開元) 10(722) 6현종은 본인 스스로 금문을 주()로 하고 공안국(孔安國)ㆍ정현(鄭玄)ㆍ위소(韋昭)ㆍ왕숙(王肅)ㆍ위극기(魏克己), 다섯 사람의 제주(諸注)를 채용하여 어주효경(御注孝經)』 1권을 지어 천하에 반포했다. 여기에 더해, 원행충(元行沖)에게 명하여 개원시주의 ()」 3권을 작성케 하였다.

 

또한, 천보(天寶) 2(743) 5월에 이르러현종은 개원시주의 모자란 점을 보완하고 새롭게 효경을 주석하여 이것을 천하에 반포했다이것이 세칭 천보중주(天寶重注)’이다. 또한, 천보 4(745) 9현종은 친히 팔분(八分)의 서체로서 천보중주’ 1권을 붓으로 써서 거대한 돌에 각하여 장안(長安)의 태학(大學앞에 세웠다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말하는 그 유명한 석대효경(石臺孝經)이다. 그런데 원행충의 소가 개원시주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그 ()」 3권을 중수할 필요가 생겼다그래서 천보 5(746) 2월에 천보중주에 일치되도록 부분 수정을 가하였다. 이렇게 어주가 세상에서 통용되게 되자 공()ㆍ정(이주()는 모두 빛이 바래버렸고안타깝게도 오대(五代)의 난()을 거치면서 모두 사라졌다.

 

그 후북송의 옹희(雍熙원년(984)에 일본의 승려 쵸오넨(奝然, ?~1016, 헤이안平安 중기의 토오다이지東大寺의 학승코오토京都의 사람. 983년에 入宋송태종을 알현)이 태종에게 정주(鄭注)한 책을 헌상하였고태종은 이 책을 비부(秘府)에 보관하였다.

 

그리고 고문효경은 공전(孔傳)이 사라진 본문만 남아있는 좀 기묘한 판본이 송나라 비각(秘閣)에 보존되어 있었는데사마광이 그 본문에 의거하여 고문효경지해(古文孝經指解)를 지었고, 세상에서는 이 사마광의 지해』 본문을 송본효경宋本孝經이라고 부른다. 당말에 사라진 고문효경은 일본에 고판본이 남아 그 정체를 알 수 있다. 

 

이 송본효경을 가지고 주자가 고문경의 모범이라 착각하고, 효경간오(孝經刊誤)라는 불행한 책을 지었고, 그 책의 체제에 따라 원나라의 동정() 효경대의(孝經大義)를 지었고, 바로 효경대의가 조선왕조의 효경의 대세를 장악했다.

 

한편, 송나라에 들어서서, 원행충의 소 3권에도 모자란 점이 있다고 생각했고, 진종(眞宗함평(咸平) 3(1000) 3월에 그 유명한 소()의 대가 형병(邢昺)이 조()를 받들어두호(杜鎬)ㆍ서아(舒雅)ㆍ손석(孫奭)과 더불어 교정(校定증손(增損)하였다이것이 바로 형병의 효경정의(孝經正義)』 3권이다.

 

현종의 천보중주(天寶重注)』 1권과 형병의 효경정의(孝經正義)』 3권을 합본하고그 앞에 형병 찬()의 효경주소서(孝經注疏序)」 75자와 성도부학주향공(成都府學主鄕貢부주봉우찬(傅注奉右撰)의 ()」 454를 첨가하여 성립시킨 것이 현재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는 효경주소(孝經注疏)』 9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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