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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맹자집주(孟子集註)

[맹자집주 양혜왕상(梁惠王上) 3] 오십 보 도망간 사람이 백 보 도망간 사람을 비웃다 / 이민이속장(移民移粟章)/ 이오십보소백보(以五十步笑百步)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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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梁惠王曰(양혜왕왈): “寡人之於國也(과인지어국야), 盡心焉耳矣(진심언이의). 하내흉(河內凶), 則移其民於河東(즉이기민어하동), 移其粟於河內(이기속어하내). 河東凶亦然(하동흉역연). 

 

양혜왕이(梁惠王) 말하기를(曰): 과인이(寡人之) 나라에 대해서(於國也), 그것에(焉) 마음을 다할(盡心) 뿐이다(耳矣). 하내에(河內) 흉년이 들면(凶, 則) 그 백성을(其民) 하동으로(於河東) 옮기고(移), 그 곡식을(其粟) 하내로(於河內) 옮긴다(移). 하동에(河東) 흉년이 들면(凶) 또한(亦) 그렇게 한다(然). 

  • 寡人之於國也 : 종결어미 也를 之와 연용해서 쓰면, 그것이 구나 절이라는 표시다. 특히 문장의 맨 앞에서 주어절이나 부사절로 쓰는 경우가 많다.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선생님께서 그것을 구하는 것은, 아마 다른 사람이 구하는 것과 다를 것이다!)]
  • 두 개의 문장을 하나로 만들면 각각 하나의 절이 되는데, 이때 절 안에 있는 주어 다음에는 반드시 之를 붙여서 주어임을 표시한다. '不患人之不己知(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마라).는 不患과 人不己知를 합쳐서 하나의 문장이 되었다. 不患이 서술어고, 人之不己知가 목적어절인데, 목적어절의 주어인 人에 之를 붙여서 그것이 절이라는 표시를 한 것이다. (맹자로 문리나기, 임옥균)

 

寡人, 諸侯自稱, 言寡德之人也. 河內河東皆魏地. 凶, 歲不熟也. 移民以就食, 移粟以給其老稚之不能移者.

과인(寡人)은, 제후가(諸侯) 자기를(自) 부른(稱) 것으로, 덕이 적은(寡德之) 사람(人)이란 말이다(言-也). 하내와(河內) 하동은(河東) 모두(皆) 위나라(魏) 땅이다(地). 흉(凶)은, 결실이(歲) 익지 않음이다(不熟也). 백성을 ㄹ옮겨서(移民以) 나아가(就) 먹게 하고(食), 곡식을 옮겨서(移粟以) 그(其) 늙고(老) 어린(稚之) 옮기지(移) 못하는(不能) 사람에게(者) 주었다(給).

 

察鄰國之政(찰인국지정), 無如寡人之用心者(무여과인지용심자). 鄰國之民不加少(인국지민불가소), 寡人之民不加多(과인지민불가다), 何也(하여)?”

 

이웃 나라의(鄰國之) 정치를(政) 살펴보면(察), 과인이(寡人之) 마음 쓰는(用心) 것(者) 같은(如) <사람이> 없다(無). 이웃 나라의(鄰國之) 백성이(民) 더(加) 적어지지(少) 않고(不), 과인의(寡人之) 백성이(民) 더(加) 많아지지(多) 않으니(不), 어째서인가요(何也)?

  • 無如寡人之用心者: '無如~者'는 '~만한 것(사람/경우)이 없다'로 해석한다. 寡人之用心者가 절이고 주어인 寡人 뒤에 주격조사인 之를 썼다. (맹자로 문리나기, 임옥균)
  • 不加少, 不加多: 少와 多가 서술어다. 加는 서술어를 꾸미는 부사어로 '더, 더욱'이란 뜻이다. 不과 서술어 사이에는 부사어나 부가적인 말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3-2 孟子對曰(맹자대왈): “王好戰(왕호전), 請以戰喩(청이전유). 塡然鼓之(전연고지), 兵刃旣接(병인기접), 棄甲曳兵而走(기갑예병이주), 或百步而後止(혹백보이후지), 或五十步而後止(혹오십보이후지), 以五十步笑百步(이오십보소백보), 則何如(즉하여)?” 曰(왈): “不可(불가), 直不百步耳(직불백보이), 是亦走也(시역주야).”

 

맹자가(孟子) 대답하여 말하기를(對曰): 왕께서(王) 전쟁을(戰) 좋아하므로(好), 전쟁으로(以戰) 비유하기를(喩) 청합니다(請). 둥둥(塡然) 북을 울리고(鼓之), 병기와(兵) 칼날이(刃) 이미(旣) 부딪쳤는데(接), 갑옷을 버리고(棄甲) 병기를 끌고(曳兵而) 도망가서(走), 어떤 사람은(或) 백 보(百步)가 지나서(而後) 멈추고(止), 어떤 사람은(或) 오십 보가(五十步) 지나서(而後) 멈추고(止), 오십 보 간(五十步) 것으로(以) 백 보 간 것을(百步) 비웃는다면(則) 어떤가요(何如)? 말하기를(曰): 옳지 않으니(不可), 다만(直) 백 보를 가지(百步) 않은 것(不) 뿐이고(耳), 이것(是) 또한(亦) 도망간 것이다(走也).

  • 塡然鼓之: 之는 앞에 있는 특정한 명사를 받지 않고 일반적인 사실이나 사물을 가리킨다. 이 경우 之는 앞에 있는 글자를 동사로 해석하라는 지시 역할을 한다. 鼓는 '북'이 아니라 '북을 울리다'라는 동사로 해석한다. 

 

○ 塡, 鼓音也. 兵以鼓進, 以金退. 直, 猶但也. 言此以譬鄰國不恤其民, 惠王能行小惠, 然皆不能行王道以養其民, 不可以此而笑彼也.

전(塡)은, 북소리다(鼓音也). 병사가(兵) 북소리로써(以鼓) 나아가고(進), 쇳소리로써(以金) 물러난다(退). 직(直)은, 다만과 같다(猶但也). 이것으로(此以) 이웃 나라가(鄰國) 그 백성을(其民) 구휼하지 않고(不恤) , 혜왕은(惠王) 작은 은혜를(小惠) 베풀었으며(能行), 그러나(然) 모두(皆) 왕도(王道)를 행함으로써(行以) 그 백성을(其民) 기름을(養) 못했으니(不能), 이것으로(以此而) 저것을(彼) 비웃을 수(笑) 없음을(不可-也) 비유하여(譬) 말했다(言).

 

曰: “王如知此(왕여지차), 則無望民之多於鄰國也(즉무망민지다어인국야).

 

말하기를(曰): 왕께서(王) 만약(如) 이것을 안다면(知此, 則) 백성이(民之) 이웃 나라보다(於鄰國) 많기를(多) 바라지(望) 마시오(也).

  • 無望民之多於鄰國也: 之는 목적어절의 주어를 표시하는 주격조사다. 於 앞에 형용사가 오면 '~보다'라는 비교급으로 많이 쓰인다. 

 

楊氏曰: “移民移粟, 荒政之所不廢也. 然不能行先王之道, 而徒以是爲盡心焉, 則末矣.”

양씨가 말하기를: 백성을 옮기고(移民) 곡식을 옮기는(移粟) 것이, 흉년의 정치에서(荒政之) 없앨(廢) 수 없는(不) 것이다(所也). 그러나(然) 선왕의 도를(先王之道) 행할(行) 수 없는데도(不能, 而) 다만(徒) 이것으로(以是) 거기에(焉) 마음을 다했다고(盡心) 한다면(爲, 則) 지엽이다(末矣).

 

3-3 不違農時(불위농시), 穀不可勝食也(곡불가승식야); 數罟不入洿池(촉고불입오지), 魚鼈不可勝食也(어별불가승식야); 斧斤以時入山林(부근이시입산림), 材木不可勝用也(재목불가승용야). 穀與魚鼈不可勝食(곡여어별불가승식), 材木不可勝用(재목불가승용), 是使民養生喪死無憾也(시사민양생상사무감야). 養生喪死無憾(양생상사무감), 王道之始也(왕도지시야).

 

농사짓는 때를(農時) 어기지 않으면(不違), 곡식을(穀) 모두(勝) 먹을(食) 수 없고(不可-也); 빡빡한 그물이(數罟) 웅덩이에(洿池) 넣지 않으면(不入), 물고기와 자라를(魚鼈) 전부(勝) 먹을(食) 수 없고(不可-也); 도끼(斧斤) 때에 따라(以時) 산림에(山林) 들어가면(入), 재목을(材木) 모두(勝) 쓸(用) 수 없다(不可-也). 곡식과(穀與) 물고기를(魚鼈) 전부(勝) 먹을(食) 수 없고(不可), 목재를(材木) 전부(勝) 쓸(用) 수 없으면(不可), 이것은(是) 백성으로(民) 하여금(使) 산 사람(生)을 봉양하고(養) 죽은 사람을(死) 장례 지냄에(喪) 유감이(憾) 없다(無-也). 산 사람(生)을 봉양하고(養) 죽은 사람을(死) 장례 지냄에(喪) 유감이(憾) 없음이(無), 왕도의(王道之) 시작이다(始也).

  • 穀不可勝食也 : '可以+서술어'와 '可+서술어'는 쓰임이 다르다. '可以+서술어'는 앞에 있는 말이 서술어의 주어가 되고, '可+서술어'는 앞에 있는 말이 서술어의 목적어인데, 강조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온 것이다. 즉, 원래 문장은 '不可勝食穀也'다.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옛 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그 사람은> 스승이 될 수 있다) / 十世可知也?(십 세를 알 수 있을까요?)] (맹자로 문리나기, 임옥균)
  • 使民養生: 使는 '使+대상(주어)+서술어' 형태로 쓴다. '~으로 하여금 ~하게 하다'라고 해석한다. 이 문장의 주제가 왕도이고 왕을 주어로 보아 '왕이 백성으로 하여금 산 사람을 봉양하게 한다'로 해석한다. 

 

○ 農時, 謂春耕夏耘秋收之時. 凡有興作, 不違此時, 至冬乃役之也. 不可勝食, 言多也. 數, 密也. 罟, 網也. 洿, 窊下之地, 水所聚也. 古者網罟必用四寸之目, 魚不滿尺, 市不得粥, 人不得食.

농시는(農時), 봄에 밭 갈고(春耕) 여름에 김매고(夏耘) 가을에 수확하는(秋收之) 때(時)를 말한다(謂). 무릇(凡) 有공사를 일으킴(興作)에는, 이 때를(此時) 어기지 않고(不違), 겨울이 오면(至冬) 바로(乃) 그것을(之) 하도록 한다(役-也). 전부(勝) 먹을(食) 수 없음(不可)은, 많다는 말이다(言多也). 촉(數)은, 촘촘함이다(密也). 고는(罟), 그물이다(網也). 오(洿)는, 우묵하게(窊) 내려간(下之) 땅으로(地), 물이(水) 모이는 곳이다(所聚也). 옛날에(古者) 그물이(網罟) 반드시(必) 4촌의 눈(四寸之目)을 쓰고(用), 물고기가(魚) 한 척에(尺) 가득하지 않으면(不滿), 시장에서(市) 팔(粥) 수 없었고(不得), 사람들이(人) 먹을(食) 수 없었다(不得).

 

山林川澤與民共之而有厲禁草木零落然後斧斤入焉此皆爲治之初法制未備且因天地自然之利而撙節愛養之事也然飮食宮室所以養生祭祀棺槨所以送死皆民所急而不可無者今皆有以資之則人無所恨矣王道以得民心爲本故以此爲王道之始.

산림과(山林) 천택은(川澤), 백성과 더불어(與民) 그것을 함께 했고(共之, 而) 엄격한(厲) 금지가(禁) 있었다(有). 초목이(草木) 시들어 잎이 떨어지면(零落), 그 뒤에(然後) 도끼가(斧斤) 거기에(焉) 들어갔다(入). 이것이(此) 모두(皆) 다스림의(爲治之) 초기에(初), 법제도가(法制) 갖춰지지(備) 않고(未), 또(且) 천지자연의(天地自然之) 이로움을(利) 따라서(因, 而) 아껴 쓰고(撙節) 사랑하여 기르는(愛養之) 일이다(事也). 그러나(然) 음식과(飮食) 궁실은(宮室) 산 사람을(生) 봉양하는(養) 것이고(所以), 제사(祭祀)와 관곽은(棺槨) 죽은 사람을(死) 보내는(送) 방법이니(所以), 모두(皆) 백성이(民) 급하게 여기는(急) 것이고(所而) 없는 것이(無者) 불가하다(不可). 지금(今) 모두(皆) 이것을(之) 이용할(資) 수 있다면(有以, 則) 사람이(人) 한이 될 것이(所恨) 없다(無-矣). 왕도는(王道) 민심을 (民心) 얻는 것으로(以得) 근본을 삼고(爲本), 그러므로(故) 이것으로(以此) 왕도의 시작(王道之始)이 된다(爲).

 

3-4 五畝之宅(오무지택), 樹之以桑(수지이상), 五十者可以衣帛矣(오십자가이의금의); 雞豚狗彘之畜(계돈구체지축), 無失其時(무실기시), 七十者可以食肉矣(칠십자가이식육의);

 

다섯 무의(五畝之) 집터에(宅), 뽕나무를(以桑) 거기에(之) 심으면(樹), 나이 오십인 사람이(五十者) 비단옷을(帛) 입을(衣) 수 이고(可以-矣); 닭(雞), 돼지(豚), 개(狗), 큰 돼지(彘)의(之) 가축(畜)이, 그(其) <번식의> 때(時)를 잃지 않으면(無失), 칠십 살 먹은 사람이(七十者) 고기를(肉) 먹을(食) 수 있고(可以-矣);

  • 雞豚狗彘之畜: 畜를 '휵'으로 읽으면 '기른다'로 해석하고 之를 목적어 전치 표시 구조조사로 본다. 이 문장은 '닭, 돼지, 개, 큰 돼지를 기르는 것에'라고 해석한다. 

 

○ 五畝之宅, 一夫所受, 二畝半在田, 二畝半在邑. 田中不得有木, 恐妨五穀, 故於牆下植桑以供蠶事. 五十始衰, 非帛不煖, 未五十者不得衣也. 畜, 養也. 時, 謂孕子之時, 如孟春犠性毋用牝之類也. 七十非肉不飽, 未七十者不得食也.

다섯 무의(五畝之) 택지는(宅), 한(一) 장정이(夫) 받는 것으로(所受), 2무 반은(二畝半) 밭(田)에 있고(在), 2무 반은(二畝半) 마을에(邑) 있다(在). 밭 가운데(田中) 나무가(木) 있으면(有) 안되고(不得), 오곡을(五穀) 방해할까(妨) 두렵고(恐), 그러므로(故) 담당 아래에(於牆下) 뽕나무를(桑) 심고(植) 그것으로(以) 누에치는 일에(蠶事) 공급했다(供). 오십 살이면(五十) 노쇠하기(衰) 시작해서(始), 비단옷이 아니면(非帛) 따뜻하지 않으니(不煖), 오십살(五十)이 안된(未) 사람은(者) 입을(衣) 수 없다(不得-也). 휵(畜)은, 기름이다(養也). 시(時)는, 새끼를 배는(孕子之) 때(時)를 말하고(謂), 如孟春犠性毋用牝之類也. 칠십 살이면9七十) 고기가 아니면(非肉) 배부르지 않으니(不飽), 칠십 살이(七十) 아닌(未) 사람은(者) 먹을(食) 수 없다(不得-也).

 

百畝之田(백무지전), 勿奪其時(물탈기시), 數口之家可以無飢矣(수구지가가이무기의); 謹庠序之敎(근상서지교), 申之以孝悌之養(신지이효제지양), 頒白者不負戴於道路矣(반백자부부대어도로의).

 

백 무의 밭에(百畝之田), 그(其) <농사짓는> 때를(時) 뺏지 않으면(勿奪), 몇 식구의(數口之) 집이(家) 굶지(飢) 않을(無) 수 있고(可以矣); 상서(학교)의(庠序之) 가르침을(敎) 삼가하고(謹), 효제의(孝悌之) 기름으로써(養) 그것을(之) 거듭한다면(申), 머리 희끗한(頒白) 사람이(者) 도로에서(於道路) 등에 지고(負) 머리에 이지(戴) 않는다(不-矣).

  • 樹之以桑, 申之以孝悌之養의 之는 앞에 나온 '五畝之宅'과 '謹庠序之敎'를 받는 대명사다. 

 

○ 百畝之田, 亦一夫所受. 至此則經界正, 井地均, 無不受田之家矣. 庠序, 皆學名也. 申, 重也, 丁寧反覆之意. 善事父母爲孝, 善事兄長爲悌. 頒, 與斑同, 老人頭半白黑者也. 負, 任在背, 戴, 任在首. 夫民衣食不足, 則不暇治禮義; 而飽煖無敎, 則又近於禽獸. 故旣富而敎以孝悌, 則人知愛親敬長而代其勞, 不使之負戴於道路矣.

백무의(百畝之) 밭은(田), 또한(亦) 한(一) 장정이(夫) 받는 것이다(所受). 이것에 이르면(至此則) 경계가(經界) 바르게 되고(正), 정지가(井地) 균등해서(均), 밭을(田) 받지 못하는(不受之) 집이(家) 없다(無矣). 상서는(庠序), 모두(皆) 학교의 명칭이다(學名也). 신(申)은, 거듭함이고(重也), 간곡하게(丁寧) 반복한다는(反覆之) 뜻이다(意). 부모를(父母) 잘 섬기는 것을(善事) 효라 하고(爲孝), 형장을(兄長) 잘 섬기는 것을(善事) 제라 한다(爲悌). 반(頒)은, 반과(與斑) 같고(同), 노인의(老人) 머리가(頭) 반은(半) 희고 검은(白黑) 사람이다(者也). 부(負)는, 짐이(任) 등에 있고(在背), 대(戴)는, 짐이(任) 머리에 있다(在首). 무릇(夫) 백성의(民) 의식이(衣食) 모자라면(不足, 則) 예의를(禮義) 다스릴(治) 겨를이 없고(不暇); 그리고(而) 배불리 먹고(飽) 따뜻하게 입고서(煖) 가르침이 없으면(無敎, 則) 또(又) 금수에(於禽獸) 가깝다(近). 그러므로(故) 이미(旣) 부유하면(富而) 효제로써(以孝悌) 가르친다면(敎, 則) 사람이(人) 어버이를 사랑하고(愛親) 어른 공경할줄(敬長) 알아서(知而) 그 수고로움을(其勞) 대신하고(代), 그들이(之) 도로에서(於道路) 짐을 지고 이도록(負戴) 하게 하지 않는다(不使矣).

 

七十者衣帛食肉(칠십자의금식육), 黎民不飢不寒(여민불기불한), 然而不王者(연이불왕자), 未之有也(미지유야).

 

칠십 살 먹은(七十) 사람이(者) 비단옷을 입고(衣帛) 고기를 먹으며(食肉), 백성이(黎民) 굶지 않고(不飢) 춥지 않으며(不寒), 그리고 나서도(然而) 왕노릇 하지 못하는(不王) 사람은(者), 아직(未) 있지 않다(之有也).

 

○ 衣帛食肉但言七十, 擧重以見輕也. 黎, 黑也, 黎民, 黑髮之人, 猶秦言黔首也. 少壯之人, 雖不得衣帛食肉, 然亦不至於飢寒也. 此言盡法制品節之詳, 極財成輔相之道, 以左右民, 是王道之成也.

비단옷을 입고(衣帛) 고기를 먹는(食肉) 것을 단지(但) 칠십 세만(七十) 말한(言) 것은, 중한 것을 들어(擧重) 그것으로(以) 가벼운 것을(輕) 보임이다(見也). 여(黎)는, 흑색이다(黑也), 여민(黎民)은, 검은 머리의(黑髮之) 사람이니(人), 진나라 때(秦) 검수를(黔首) 말함과(言) 같다(猶也). 어리고 젊은(少壯之) 사람이(人), 비록(雖) 비단옷을 입고(衣帛) 고기를 먹을(食肉) 수 없으나(不得, 然), 또한(亦) 굶주림과 추위에(於飢寒) 이르지 않는다(不至也). 이것은(此) 言법제와(法制) 품절의(品節之) 상세함을(詳) 다하고(盡), 재성보상의(財成輔相之) 도를(道) 지극하게 해서(極), 백성을 돕는다면(以左右民), 이것이(是) 왕도의(王道之) 완성이다(成也).

 

3-5 狗彘食人食而不知檢(구체식인식이부지검), 塗有餓莩而不知發(도유아부이부지발); 人死(인사), 則曰(즉왈): ‘非我也(비아야), 歲也(세야).’ 

 

개와(狗) 돼지가(彘) 사람의 음식을(人食) 먹는데도(而) 단속함을(檢) 알지 못하고(不知), 길에(塗) 굶어죽는 시체가(餓莩) 있는데도(而) <창고를> 열줄(發) 모르고(不知); 사람이 죽으면(人死則) 말하기를(曰): 내가(我) 아니라(也), 흉년 때문이다(歲也).

  • 狗彘食人食而不知檢: 접속사 而는 순접으로 '그리고'로 쓰기도 하고 역접으로 '그러나'로 쓰기도 한다. 순접과 역접의 구별은 문액에 따라 할 수 밖에 없다. 

 

是何異於刺人而殺之(시하이어자인이살지), 曰(왈): ‘非我也(비아야), 兵也(병야).’ 王無罪歲(왕무죄세), 斯天下之民至焉(사천하지민지언).”

 

이것이(是) 사람을 찔러서(刺人) 그를 죽이고(殺之), 내가(我) 아니고(也), 무기 때문이다(兵也)라고 말하는(曰) 것과(於) 무엇이 다른가(何異). 왕이(王) 흉년을(歲) 탓함이(罪) 없다면(無, 斯) 천하의(天下之) 백성이(民) 여기(위나라)에(焉) 이를 것입니다(至).

  • 王無罪歲, 斯天下之民至焉: 斯는 가정(~라면)이나 조건(~라야)을 나타내는 접속사다. 罪는 여기서 서술어+목적어 구조로 '탓하다'라는 뜻의 동사로 썼다. 

 

○ 檢, 制也. 莩, 餓死人也. 發, 發倉廩以賑貸也. 歲, 謂歲之豐凶也. 惠王不能制民之産, 又使狗彘得以食人之食, 則與先王制度品節之意異矣. 至於民飢而死, 猶不知發, 則其所移特民間之粟而已. 乃以民不加多, 歸罪於歲凶, 是知刃之殺人, 而不知操刃者之殺人也. 不罪歲, 則必能自反而益修其政. 天下之民至焉, 則不但多於鄰國而已.

검(檢)은, 제재함이다(制也). 부(莩)는, 굶어죽은(餓死) 사람이다(人也). 발(發)은, 창고(倉廩) 열어서(發) 그것으로(以) 구휼하고(賑) 빌려줌(貸)이다(也). 세(歲)는, 한 해의(歲之) 풍흉을(豐凶) 말한다(謂也). 혜왕(惠王)이 백성의 재산을(民之産) 만들어주지(制) 못하고(不能), 또(又) 개와 돼지로(狗彘) 하여금(使) 사람의 음식을(人之食) 먹도록(食) 했다면(得以, 則) 선왕이(先王) 제도하고(制度) 품절한(品節之) 뜻(意)과 더불어(與) 다른 것이다(異矣). 백성이(民) 굶주리고(飢而) 죽는(死) 데에(於) 이르러(至), 오히려(猶) 창고 여는 것을(發) 몰랐다면(不知, 則) 그(其) 옮긴 것(所移)은 다만(特) 백성의(民間之) 곡식일(粟) 뿐이다(而已). 바로(乃) 백성이(民) 더(加) 많아지지(多) 않음(不)으로(以), 흉년에(於歲凶) 죄를 돌리니(歸罪), 이것은(是) 칼날이(刃之) 사람 죽임을(殺人) 알고(知, 而) 칼날을 잡은(操刃) 사람이(者之) 사람 죽임을(殺人) 모른 것이다(不知-也). 흉년을 탓하지 않으면(不罪歲, 則) 반드시(必) 스스로 반성하고(自反而) 더욱(益) 자기 정치를(其政) 닦을(修) 수 있다(能). 천하의 백성이(天下之民) 여기에(焉) 오면(至, 則) 다만(但) 이웃 나라보다(於鄰國) <백성이> 많아짐(多) 뿐만(而已) 아닐 것이다(不).

 

○ 程子曰: “孟子之論王道, 不過如此, 可謂實矣.”

정자가 말하기를: 맹자가(孟子之) 왕도(王道)를 논한(論) 것이, 이와 같음에(如此) 지나지 않으니(不過), 진실하다고(實) 말할 수 있다(可謂-矣).

 

又曰: “孔子之時, 周室雖微, 天下猶知尊周之爲義, 故春秋以尊周爲本. 至孟子時, 七國爭雄, 天下不復知有周, 而生民之塗炭已極. 當是時, 諸侯能行王道, 則可以王矣. 此孟子所以勸齊ㆍ梁之君也. 蓋王者, 天下之義主也. 聖賢亦何心哉? 視天命之改與未改耳.”

또 말하기를: 공자의(孔子之) 시대에(時), 주나라 왕실이(周室) 비록(雖) 약했지만(微), 천하가(天下) 오히려(猶) 주나라를 높임이(尊周之) 의가 됨을(爲義) 알았으니(知), 그러므로(故) 춘추에서는(春秋) 주나라를 높임으로써(以尊周) 근본을 삼았다(爲本). 맹자의 시대에(孟子時) 이르러(至), 7국이(七國) 패권을 다투어(爭雄), 천하가(天下) 다시(復) 주나라가 있음을(有周) 알지(知) 못하고(不, 而) 생민의(生民之) 도탄에 빠짐이(塗炭) 이미(已) 극에 달헀다(極). 이때(是時)를 당하여(當), 제후가(諸侯) 왕도를(王道) 행할 수 있다면(能行, 則) 왕노릇(王) 할 수 있었다(可以矣). 이것이(此) 맹자가(孟子) 제나라와 양나라의 임금에게(齊ㆍ梁之君) 권고한(勸) 까닭이다(所以-也). 대체로(蓋) 왕이란(王者) 것은, 천하의(天下之) 의로운(義) 주인이다(主也). 성현이(聖賢) 또한(亦) 어떤(何) 마음이겠는가(心哉)? 천명의(天命之) 바뀜과(改與) 바뀌지 않음을(未改) 보았을(視) 뿐이다(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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