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雍也可使南面.” (자왈 옹야가사남면)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옹은(雍也) 남면(南面)하게(使) 할 만하다(可).
- 使(사): 다음에 雍(옹)을 가리키는 인칭대사가 생략되었다.
南面者, 人君聽治之位. 言仲弓寬洪簡重, 有人君之度也.
남면(南面)이란 것은(者), 임금이(人君) 다스림(治)을 듣는(聽之) 자리다(位). 중궁이(仲弓) <성품이> 너그럽고 넓으며 간략하고 중후하여(寬洪簡重), 임금의(人君之) 도량이(度) 있다는(有也) 말이다(言).
仲弓問子桑伯子, 子曰: “可也簡.” (중궁문자상백자 자왈 가야간)
중궁이(仲弓) 자상백자를(子桑伯子) 물었고(問),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괜찮다(可也) 간략함이(簡).
- 簡(간)은 대범하다고 해석한다. '까탈스럽지 않고 너그럽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치밀하지 않다, 신중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의미도 있다. [帝德罔愆, 臨下以簡, 御衆以寬.(임금의 덕에 허물이 없으시어 아랫사람에게 대범하게 임하시고 대중을 너그럽게 다스리셨습니다.) <書經 大禹謨>]
子桑伯子, 魯人, 胡氏以爲疑卽莊周所稱子桑戶者是也.
자상백자(子桑伯子)는, 노나라 사람으로(魯人), 호씨가(胡氏) 곧(卽) 장주에서(莊周) 자상호자라고 부른(所稱子桑戶) 사람이(者) 이 사람이(是也) 아닐까(疑) 생각했다(以爲).
仲弓以夫子許己南面, 故問伯子如何. 可者, 僅可而有所未盡之辭. 簡者, 不煩之謂.
중궁은(仲弓) 선생님이(夫子) 자기를(己) 남면 할만하다고(南面) 인정하기(許) 때문에(以), 그러므로(故) 백자(伯子) 어떠한가(如何) 물었다(問). 가(可)라는 것은(者), 겨우(僅) 괜찮고(可而) 미진한 것이(所未盡) 있다는(有之) 말이다(辭). 간(簡)이란 것은(者), 번잡하지 않음을(不煩之) 말한다(謂).
仲弓曰: “居敬而行簡(거경이행간), 以臨其民(이임기민), 不亦可乎(불역가호)? 居簡而行簡(거간이행간), 無乃大簡乎(무내태간호)?”
중궁이 말하기를: <마음이> 공경함에(敬) 머물면서(居而) 간략하게(簡) 행동하고(行), 그것으로(以) 그 백성을(其民) 대하면(臨), 또한(亦) 옳지(可) 않은가요(不-乎)? 간략함에(簡) 머물면서(居而) 간략하게(簡) 행동하면(行), 곧(無乃) 너무(大) 간략하지 않은가요(簡乎)?
- 無乃(무내)는 문장 끝에 의문의 어기를 표시하는 어기조사가 같이 온다. '바로 ~이 아닌가'라는 뜻의 반문형 의문문을 이루어 긍정을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毋乃(무내)·毋迺(무내)와 같다.
○ 言自處以敬, 則中有主而自治嚴, 如是而行簡以臨民, 則事不煩而民不擾, 所以爲可.
경으로써(以敬) 스스로 처신한다면(自處, 則) 마음에(中) 주장이(主) 있어서(有而) 자기를(自) 다스림이(治) 엄격하고(嚴), 이와 같다면(如是而) 행동을 간략하게 함으로써(行簡以) 백성을(民) 대한다면(臨, 則), 일이(事) 번잡하지 않고(不煩而) 백성이(民) 어지럽히지 않아(不擾), 가함이 되는(爲可) 까닭이라는(所以) 말이다(言).
若先自處以簡, 則中無主而自治疏矣, 而所行又簡, 豈不失之太簡, 而無法度之可守乎?
만약(若) 먼저(先) 간략함으로(以簡) 스스로 처한다면(自處, 則) 마음에(中) 주장이(主) 없어서(無而) 자기를 다스림이(自治) 소홀하고(疏矣), 그리고(而) 행동하는 것이(所行) 또(又) 간략하면(簡), 어찌(豈) 不失之太簡, 而無法度之可守乎?
『家語』記‘伯子不衣冠而處, 夫子譏其欲同人道於牛馬.’ 然則伯子蓋太簡者, 而仲弓疑夫子之過許與?
가어에(家語) 백자가(伯子) 옷과 관을 입지 않고(不衣冠而) 지내므로(處), 선생님이(夫子) 그가(其) 말과 소와(於牛馬) 사람의 도리를(人道) 같게(同) 하려 한다(欲)고 비난했다(譏)는 기록이 있다(記). 그렇다면(然則) 백자는(伯子) 대체로(蓋) 너무 간략한(太簡) 사람이고(者), 그래서(而) 중공은(仲弓) 선생님이(夫子之) 지나치게(過) 허여한 것이(許) 아닐까(疑與)? 했다.
子曰: “雍之言然.” (자왈 옹지언연)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옹의(雍之) 말이(言) 옳다(然).
仲弓蓋未喩夫子可字之意, 而其所言之理, 有黙契焉者, 故夫子然之.
중궁이(仲弓) 대체로(蓋) 선생님의(夫子) 가자(可字之)의 뜻(意)을 깨닫지 못했고(未喩), 그러나(而) 그(其) 말한 것의(所言之) 이치는(理), 그것에(焉) 말없이 우연히 맞는(黙契) 것이(者) 있고(有), 그러므로(故) 선생님이(夫子) 그것을(之) 그렇다고 했다(然).
○ 程子曰: “子桑伯子之簡, 雖可取而未盡善, 故夫子云可也.
정자가 말하기를: 자상백자의(子桑伯子之) 간략함이(簡), 비록(雖) 취할(取)만 하지만(可而) 선함을 다하지(盡善) 못했고(未), 그러므로(故) 선생님이(夫子) 가라고만(可) 말했다(云-也).
仲弓因言內主於敬而簡, 則爲要直; 內存乎簡而簡, 則爲疏略, 可謂得其旨矣.”
중궁이(仲弓) 인하여(因) 말하기를(言) 안으로(內) 경을(於敬) 위주로 하고(主而) 간략하면(簡, 則) 요약과 정직이(要直) 되고(爲); 안으로(內) 간략함을(乎簡) 보존하고(存-而) 간략하다면(簡, 則) 소략함이(疏略) 되고(爲), 그 뜻을(其旨) 얻었다고(得) 말할 수 있다(可謂矣).
又曰: “居敬則心中無物, 故所行自簡; 居簡則先有心於簡, 而多一簡字矣, 故曰太簡.”
또 말하기를: 경(敬)에 머문다면(居-則) 마음에(心中) 외물이 없으며(無物), 그러므로(故) 행하는 것이(所行) 저절로(自) 간략하고(簡); 간략함에(簡) 머문다면(居-則) 먼저(先) 간략함에(於簡) 마음이(心) 있고(有), 그러므로(而) 하나의(一) 간자(簡字)가 많아지고(多-矣), 그러므로(故) 지나치게 간략하다고(太簡) 말한다(曰).
논어의 이 장 역시 애매하고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남긴다. 이야기가 만들어진 맥락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오는 자상백자 또한 어떤 인물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자상백자를 장자에 나오는 자상호와 연결지어서 도가적 은인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자상백자를 도가적 은인으로 보면 이어 나오군 '이임기민以臨其民' 구절도 충돌한다. 이 구절은 현실의 정치 지도자의 모습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중궁은 염옹의 자다. 공자는 중궁이 '가사남면可使南面'할 수 있는 인재라고 극찬한다. 남면은 신하를 맞이하는 인군의 자리로 제후나 천자를 말한다. 공자가 특정한 지위를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정치 지도자를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말했을 것이다.
'간簡'을 주자는 '불번(번거롭지 않음)'으로 풀었고, 공안국은 '관략(관대하고 소략함)'으로 풀었다. 즉, 나라를 다스리는 방식이 간하다면, 백성을 대하는 방식이 거칠고 대범한 데가 있지만, 소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도교적 불간섭주의라는 무위지치로 볼 수도 있고, 번문욕례로 백성을 괴롭히지 않는다는 대범함을 뜻할 수도 있다. 위정편 1장의 '위정이덕 비여북신'과 마찬가지로 공자 시대에 이미 도가적 사상이나 행동방식이 있었고, 유가나 도가로 구분될 수 없는 치세의 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김용옥, 논어 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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