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君子不器.” (자왈 군자불기)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군자(君子)는 그릇처럼 한정되지 않는다(不器).
器者, 各適其用而不能相通. 成德之士, 體無不具, 故用無不周, 非特爲一才一藝而已.
기란(器者), 저마다(各) 그 쓰임(其用)에 맞아서(適-而) 서로(相) 통용(通)할 수 없다(不能). 덕을 이룬(成德之) 선비(士)는, 체(體)에 갖추지 않은(不具) 것이 없고(無), 그러므로(故) 용(用)에 두루 미치지 않음(不周)이 없으므로(無), 다만(特) 한 재주(一才)와 한 기예(一藝)를 할(爲) 뿐만이 아니다(非-而已).
이 말은 유교의 핵심으로 존중되는 명언이기도 하지만,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비교할 수 있는 유교 윤리의 대표로 비판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청교도들은 신에게 철저하게 복속함으로써, 내가 지금 이 세계에 있지만, 자신의 삶은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는 극복의 동기를 가졌다. 이런 논리의 가장 중심이 되는 개념 중 하나가 '신의 소명(부르심)'이다. 서구인은 자기 삶의 직업을 신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그 자체를 성스럽게 여겼으며, 그 소명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신의 소명을 현세에 구현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소명에서 생긴 결과를 현세에서 향유하지 않고 신의 영광을 위해서 저축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간의 소명을 이야기했다. '그리스도'를 하나의 몸에 비유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한 지체일 뿐이며,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다고'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불기가 아니라 하나의 기여야만 한다.
그러면서 베버는 유교에는 이런 초월적인 초극 충동이 없기 때문에 너무 현세의 달성만을 추구하고, 현세적 향유만을 최선의 가치로 여긴다.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초극적 독백이 없기 때문에 외면적 겉치레만 추구하고, 사회적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체면'만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하지만, 소라이는 군자는 원래 기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근본적으로 군자는 기에 의해서 한정적으로 규정될 수 없는 위상이 있다. 즉, 불기의 기는 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기를 포괄하는 것이다. 군자는 단순히 도덕적 인격체가 아니고, 민의 장이고, 모든 기를 부리는 사람이다. <김용옥, 논어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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