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康誥」曰: “克明德(극명덕).”
<서경> 강고에(康誥) 이르기를(曰): “<문왕은 자신의> 덕을(德) 잘(克) 밝혔다(明).”
* 康誥: 『서경』의 편명이다. 내용은 무왕이 아우인 강숙을 위衛에 봉하고서 그를 경계한 말로 이루어져 있다.
* 克 : 여기서는 부사로 쓰여, '능히 ~을 한다'의 뜻이 된다.
「太甲」曰: “顧諟天之明命(고시천지명명).”
<서경> 태갑에(太甲) 이르기를(曰): “<선왕은> 이(諟) 하늘의(天之) 밝은(明) 명을(命) 돌아봤다(顧, 살펴봤다).
* 太甲: 『서경』의 편명이다. 은殷의 정승 이윤이 탕湯의 덕을 말함으로써 임금 태갑에게 훈계한 말로 되어 있다.
* 諟(시): 시是, 차此 등과 같은 말로 지시대명사 '이'라는 뜻이다.
「帝典」曰: “克明峻德(극명준덕).”
<서경> 제전에(帝典) 이르기를(曰): “<요임금은> 거대한 덕을(峻德) 잘(克) 밝혔다(明).
* 峻: 높은 산을 의미하는데 그 뜻이 확대되어 '크다'는 뜻이 되었다.
皆自明也(개자명야).
모두(皆) 스스로(自) 밝힌 것이다(明也).
* 自: 주자는 '스스로'라는 뜻의 부사로 해석했는데 문맥으로 보아 '~에서부터'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로 보는 게 좋을 듯하다. <모두(皆) 밝히는 것부터(自明) <시작된다>(也)>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삼강령 가운데 명명덕明明徳에 관한 설명이다. 예문에서 보듯이 학문의 길은 덕을 밝히는 것, 즉 명명덕에서 시작된다. 주자는 여기까지를 전 1장으로 보았다.
湯之盤銘曰(탕지반명왈): “苟日新(구일신), 日日新(일일신), 又日新(우일신).”
탕임금의(湯之) 대야에(盤, 제사용 그릇?) 새긴 글(銘)에 이르기를(曰): “진실로(苟) 날로(日) 새로워지고(新), 날로 날로(日日) 새로워지고(新), 또(又) 날로(日) 새로워져라(新).”
「康誥」曰: “作新民(작신민).”
강고에(康誥) 이르기를(曰): “새로운(新) 백성을(民) 만들어라(作, 교화시켜라) / 백성을(民) 진작시켜(作) 새롭게 만들어라(新).”
詩曰: “周雖舊邦, 其命維新.” (주수구방 기명유신)
시에 이르기를(詩曰): “주나라가(周) 비록(雖) 오래된(舊) 나라지만(邦), 그(其) 명이(命) 계속(維) 새롭다(新).”
* 維: 원래 밧줄이라는 뜻인데 유惟와 통용되어 '오직'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여기서는 밧줄처럼 계속 이어진다는 의미를 취하여 '계속'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 (시고군자무소불용기극)
그러므로(是故) 군자는(君子) 그 모든 힘(其極, 극진함)을 쓰지 않는 곳이(所不用) 없다(無).
* 君子: 소인小人과 대비가 되는 말인데, 보통 다스리는 지위에 있는 자와 덕이 있는 자 또는 진리를 구하는 구도자 등의 뜻이 있다. 사서에 나오는 군자의 의미는 대개 후자인 덕徳 있는 사람과 구도자를 가리킨다.
앞 장의 명덕을 이어받아 이야기하고 있다. 군자의 덕은 반드시 천하 사람과 공유되어야 한다. 그 공유의 과정을 '밝힌다'라고 표현했다. 명덕을 밝히는 것은 단절된 사건이 아니고 연속적인 과정이다. 밝히는 것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변화에 맞춰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 이것이 '일신'이다. 그래서 '밝힘'과 '새로움'이 논리적으로 연결된다.
이 장을 분리해서 앞부분은 '명명덕明明德'을 해석한 것으로 보고, 뒷부분은 '신민新民'을 해석한 것으로 보는 주희의 관점은 근거가 없다. 더구나 여기 나오는 '작신민作新民'을 근거로 첫 장의 '친민親民'을 '신민新民'으로 고친 것은 날조에 가깝다. '작신민作新民'의 '작作'은 주희의 해석대로 '진작시키다'로 해석할 수 없고, '교화시킨다'는 의미다. 시경 강고의 원래 의미 맥락을 보면 은나라 유민의 땅에 분봉된 강숙에게는 은나라 백성을 주나라 문화에 흡수시켜야 하는 사명이 있었다.
천명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탕임금의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은 이러한 과제를 명확하게 표현했다. 천명은 항상 새롭게 받는 것이다. 한 나라가 오래되었다고 천명이 유지되지 않는다. 항상 새롭게 받아서 유지해야 한다. 새롭게 천명을 받는 것이 바로 수신의 첫 번째 뜻이다. <김용옥, 대학-학기 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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