顔淵, 季路侍. 子曰: “盍各言爾志?” (안연 계로시 자왈 합각언이지)
안연과(顔淵) 자로가(季路) <선생님을> 모시고 있었다(侍).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子曰): “어찌(盍) 각자(各) 너의(爾) <품은> 뜻을(志) 말하지 않는가(言)?”
* 盍(합): 어찌 ~하지 않는가. 何不(하불)과 같다.
☞ 今大夫曰: "女盍從舊?"(지금의 대부께서는 "당신은 왜 지난날의 관례를 따르지 않소?" 하고 말씀하시는군요.『左傳 昭公三十年 』)
* 爾(이): 이인칭대사.
子路曰: “願車馬, 衣輕裘, 與朋友共, 敝之而無憾.” (자로왈 원거마 의경구 여붕우공 폐지이무감)
자로가 말하기를(子路曰): “마차와(車) 말(馬), 의복을(衣輕裘), 친구와(朋友) 더불어(與) 함께 하고(共), 그것이(之) 헤어지더라도(敝而) 유감이(憾) 없기를(無) 바랍니다(願).”
* "거마의경구車馬衣輕裘"에서 “경輕"은 유보남(劉寶楠)의 말대로 고본(本)에는 없는 것이며, 후대에 첨가된 것이다. "거마의구車馬衣裘"(수레, 말, 속옷, 겉옷)는 모두 사치품목에 속하는 것이다. 衣裘(의구)는 의복의 통칭으로도 쓰인다.
顔淵曰: “願無伐善, 無施勞.” (안연왈 원무벌선 무시노)
안연이 말하기를(顔淵曰): “잘하는 것을(善) 자랑함이(伐) 없고(無), 공로를(勞) 드러냄이(施) 없기를(無) [힘든 일을(勞)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施) 없기를(無)] 바랍니다(願).”
* "선善"이라 함은 현대어적 함의의 도덕적인 선 (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선(善)이란 "잘함"이다. 즉 뛰어남(excellence)이요, 유능함(competence)이다.
* "무시로 無施勞”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시(施)를 "드러내다," "과시하다"의 뜻으로 보면,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시(施)를 "베푼다," "강요한다"의 뜻으로 보면 "괴롭고 힘든 일들을 남에게 강요함이 없이 혼자 스스로 감내한다"는 뜻이 된다.
* 안회의 대답은 도가적 냄새가 물씬 풍긴다. 우리가 지금 도가사상이라고 부르는 사유체계의 원류가 안회의 삶 속에 내재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自見者不明, 自是者不彰, 自伐者無功, 自衿者不長. (노자 24장)
子路曰: “願聞子之志.” (원문자지지)
자로가 말하기를(子路曰): “선생님의(子之) 뜻을(志) 듣기를(聞) 원합니다(願).”
子曰: “老者安之(노자안지), 朋友信之(붕우신지), 少者懷之(소자회지).”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子曰): “늙은 사람들이(老者) <나를> 편안하게 여기고(安之), 친구들이(朋友) <나를> 믿음직스럽게 여기고(信之), 젊은이들이(少者) <나를> 그리워하게 만들겠다(懷之) [늙은 사람은(老者) 그들을(之) 편안하게 살도록 하고(安), 친구들은(朋友) 그들에게(之) 믿음을 주고(信), 젊은이들은(少者) 그들을(之) 따르게 하겠다(懷)].”
노자(老者), 붕우(朋友), 소자(少者)를 안(安), 신(信), 회(懷)라는 동사의 목적으로 볼 수도 있고, 주어로 볼 수도 있다. 목적어로 보면 "나는 늙은이들을 편하게 해 주고, 친구들에게 믿음을 주고, 젊은이들을 가슴에 품어주고 싶다"는 뜻이 된다. 주어로 보면 "늙은이들이 나를 편하게 느끼고, 친구들이 나를 믿음직스럽게 여기고, 젊은이들이 나를 그리워한다"가 된다.
* 安(안): 편안하게 하다. 형용사가 사역동사로 전용된 것.
* 之(지): 老者(노자)를 가리키는 인칭대사. 강조 효과를 위하여 老者(노자)를 앞으로 내세우고 그 자리에 다시 인칭대사를 쓴 것. 뒤에 나오는 之(지)는 각각 朋友(붕우), 少者(소자)를 가리킨다.
* 信(신): 믿게 하다. 일반 타동사가 사역동사로 쓰인 것. 많지는 않지만 일반 타동사가 사역동사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 子孫飮馬於河.(나중에 자손이 황하에서 말에게 물을 먹였다.『史記 封禪書』)
* 懷(회): 품다, 싸다, 따르다, 위로하다, 보내다, 길들이다,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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