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昔者明王事父孝(석자명왕사부효), 故事天明(고사천명);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옛날에(昔者) 명석한 왕이(明王) 아버지를 섬기는(事父) 것이 효성스러웠고(孝), 그러므로(故) 하늘을 섬기는(事天) 것이 밝았고(明);
事母孝(사모효), 故事地察(고사지찰);
어머니를 모시는(事母) 것이 효성스러웠고(孝), 그러므로(故) 땅을 섬기는(事地) 것이 밝고 자세했고(察);
長幼順(장유순), 故上下治(고상하치).
어른과(長) 아이가(幼) 화순하도록 만들었고(順), 그러므로(故) 상하가(上下) 다스려졌다(治).
天地明察(천지명찰), 鬼神章矣(귀신장의).
천지를 <섬기는> 것이(天地) 밝고 자세하니(明察), 귀신이(鬼神) 밝게 드러났다(章矣).
故雖天子(고유천자), 必有尊也(필유존야); 言有父也(언유부야), 必有先也(필유선야); 言有兄也(언유형야), 必有長也(필유장야).
그러므로(故) 오직(雖) 전차에게는(天子), 반드시(必) 높여야 할 것이(尊) 있고(有也); 아버지가 있다고(有父) 말하는 것은(言也), 반드시(必) 선조가 있음이고(有先也); 형이 있다고(有兄) 말하는 것은(言也), 반드시(必) 어른이 있음이다(有長也).
금문 효경은 마지막 '必有長也'가 없다. 그러므로(故) '비록(雖) 천자에게도(天子), 반드시(必) 높여야 할 것이 있으니(有尊也); 어버이가 있다는(有父) 말이고(也), 반드시(必) 앞세워야 할 것이 있으니(有先也); 형이 있음을(有兄) 말한다(言也)'라고 해석한다.
宗廟致敬(종묘치경), 不忘親也(불망친야). 修身愼行(수신독행), 恐辱先也(공욕선야). 宗廟致敬(종묘치경), 鬼神著矣(귀신저의).
몸을 닦고(修身) 행동을 삼가는(愼行) 것은, 선조를(先) 욕되게 할까(辱) 걱정함이다(恐也). 종묘에서(宗廟) 공경을 다히니(致敬), <선조의> 귀신이(鬼神) 드러난다(著矣). <천자가> 종묘에서(宗廟) 공경을 다하는(致敬) 것은, 어버이를(親也) 잊지 않음이다(不忘).
孝弟之至(효제지지), 通於神明(통어신명), 光於四海(광어사해), 亡所不曁(망소불기).
효도와 공손함이(孝弟之) 지극하면(至), 신명함에(於神明) 통하고(通), 사해에(於四海) 빛나서(光), 미치지 않는(不曁) 곳이(所) 없다(亡).
『詩』云: ‘自東自西(자동자서), 自南自北(자남자북), 亡思不服(망사불복).’”
시(詩)에 이르기를(云): ‘동으로부터(自東) 서로부터(自西), 남으로부터(自南) 북으로부터(自北), <천자를> 생각하여(思) 복종하지 않는 <제후가>(不服) 없다(亡).’”
또다시 천자가 주어가 되어 논리가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주었으면 한다.
이 장은 다석의 ‘효기독론’의 원형이다. 즉 천자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곧 천신(天神: 하느님) 지신(地神: 따님)이므로 『역(易)』의 「설괘」에 ‘건은 하늘이니 아비라 칭하고, 곤은 땅이니 어미라 칭한다[乾, 天也, 故稱乎父; 坤, 地也, 故稱乎母].’라 한 것이나 장횡거(張橫渠)의 「서명(西銘)」에 ‘건칭부, 곤칭모[乾稱父, 坤稱母]’라 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말들이다. 천인상응(天人相應)의 이치를 말한 것이다. 인간은 신적인 존재이며, 우주의 모든 가능성을 구유한 존재이기 때문에 지성을 다하면 반드시 천지신명의 감응이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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