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가 자사에게 가르침 받았는가?
《史記ㆍ列傳》曰: "孟軻, 騶人也. 受業子思之門人."
사기 열전에 이르기를(《史記列傳》曰): "맹가는(孟軻), 추나라 사람이다(騶人也). 자사의 문인에게(子思之門人) 가르침 받았다(受業)."
○趙岐《題辭》曰: "孟子幼被慈母之敎, 長師孔子之孫子思, 治儒術."
○조기가(趙岐) 제사에서 말하기를(《題辭》曰): "맹자는(孟子) 어려서(幼)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았고(被慈母之敎), 커서는(長) 공자의 손자(孔子之孫) 자사를(子思) 스승으로 삼고(師), 유학의 학술을 익혔다(治儒術)."
○《漢書ㆍ藝文志》曰: "孟子名軻. 子思弟子."
○한서 예문지에 이르기를(《漢書藝文志》曰): "맹자는(孟子) 이름이 가다(名軻). 자사의(子思) 제자다(弟子)."
○《孔叢子》曰: "孟子親受業於子思."
○공총자에 이르기를(《孔叢子》曰): "맹자는(孟子) 자사에게(於子思) 직접 가르침 받았다(親受業)."
○王劭曰: "《史記》曰‘門人', 人是衍字." 【王劭, 隋之秘書監】
○왕소가 말하기를(王劭曰): "사기에서(《史記》) 문인이라 했는데(曰‘門人'), 인은(人) 바로(是) 잘못 낀 글자다(衍字)." 【왕소(王劭)는, 수나라의(隋之) 비서감이다(秘書監)】
○司馬貞曰: "王劭以人爲衍字."
○사마정이 말하기를(司馬貞曰): "왕소는(王劭) 인자를(以人) 잘못 들어간 글자로 여겼다(爲衍字)."
○吳程曰: "按孟子自魏惠王三十五年游梁, 至哀王七年而燕人畔齊. 距孔子蓋一百六十七年, 是爲周赧王之三年, 而孟子著書之成, 固猶在其後也. 況孔子夢奠時, 伯魚之沒已六載, 子思固長, 不然亦非幼矣. 子思享年六十有二, 去孔子四五十年而卒, 而孟子始生, 其不得親受業, 可見. 故孟子但曰‘私淑諸人', 而《集註》以爲子思之徒. 於〈論語序說〉, 只稱門人." 【見《通考》】
○오정이 말하기를(吳程曰): "살펴보면(按) 맹자가(孟子) 위나라 혜왕 35년에(魏惠王三十五年) 양나라에서 유세하고(游梁)부터(自), 애왕 7년에 이르러(至哀王七年而) 연나라가(燕人) 제나라에 반기를 들었다(畔齊). 공자와의 거리가(距孔子) 대략(蓋) 167년이고(一百六十七年), 이것은(是) 주나라 난왕 3년이 되어서(爲周赧王之三年, 而) 맹자가(孟子) 책을 완성한 것은(著書之成), 진실로(固) 오히려(猶) 그 뒤가 된다(在其後也). 하물며(況) 공자가(孔子) 죽었을 때는(夢奠時), 백어가(伯魚之) 죽고(沒) 이미(已) 6 년이 지났고(六載), 자사가(子思) 진실로 장성했거나(固長), 그렇지 않더라도(不然) 또한(亦) 어리지 않았다(非幼矣). 자사의(子思) 향년이(享年) 62세였고(六十有二), 공자와의 거리가(去孔子) 4~50년이 지나(四五十年而) 죽었으니(卒, 而) 맹자가(孟子) 비로소 태어나(始生), 그가(其) 직접 가르침 받을 수 없었음을(不得親受業), 알 수 있고(可見). 그러므로(故) 맹자는(孟子) 다만 말하기를(但曰) ‘다른 사람에게 사숙했다(私淑諸人)'라고 했고(, 而) 집주는(《集註》) 자사의 문도로 여겼다(以爲子思之徒). 논어서설에서(於〈論語序說〉), 단자(只) 문인으로 칭했다(稱門人)." 【見《通考》】
○王草堂曰: "《史記ㆍ世家》, 子思年六十二. 然考《春秋》, 孔子卒在周敬王四十一年, 而伯魚先孔子卒已三年矣. 向使子思生於伯魚所卒之年, 亦止當在威烈王三四年之間. 乃《三遷志》及《孟子》所載, 則孟子實生於烈王四年. 其距子思卒時, 已相去五十年之遠, 焉能受業乎?" 【又云: "魯繆公曾尊禮子思. 然繆公即位, 在威烈王十九年, 則《史記》所云‘思年六十二’者, 或是八十二之誤, 亦未可知. 若孟子則斷不能親受業也."】
○왕초당이 말하기를(王草堂曰): "사기 세가에(《史記世家》), 자사의 나이가(子思年) 62세이다(六十二). 그러나(然) 춘추를 고증하면(考《春秋》), 공자가(孔子) 주 경왕 41년에(在周敬王四十一年) 죽었고(卒, 而) 백어가(伯魚) 공자보다 앞서(先孔子) 죽은 것이(卒) 이미 3년이다(已三年矣). 설령(向使) 자사가(子思) 백어가 죽은 해에(於伯魚所卒之年) 태어났더라도(生), 또한(亦) 위열왕(威烈王) 3~4년 사이에(三四年之間) 있다(止當在). 바로(乃) 삼천지와(《三遷志》及) 맹자에 실린 것이라면(《孟子》所載, 則) 맹자는(孟子) 실제로(實) 위열왕 4년에 태어났다(生於烈王四年). 자사가 졸한 때와의(子思卒時) 그 거리가(其距), 이미(已) 서로(相) 50년이나 떨어진(去五十年之) 먼 것이니(遠), 어찌(焉) 가르침을 받았겠는가(能受業乎)?" 【又云: "노 목공이(魯繆公) 자사를 존중하고 예우했다(曾尊禮子思). 그러나(然) 목공이 즉위한 것이(繆公即位), 위열왕 19년이니(在威烈王十九年, 則) 사기에(《史記》) 이른바(所云) ‘자사의 나이(思年) 62세라 한 것은(六十二’者), 혹(或) 이것이(是) 82세의(八十二之) 잘못인지(誤), 또한(亦) 알 수 없다(未可知). 만약 그렇더라도(若) 맹자는(孟子則) 결코(斷) 직접(親) 가르침 받을 수 없다(不能受業也)."】
○毛奇齡曰: "《史記》ㆍ《漢書》猶不足據, 況《三遷》諸志, 則後人撰造, 又安可信?予以《孟子》本文計之, 梁惠王三十年, 齊虜太子申, 則孟子游梁, 自當在三十年之後. 然孟子居梁不及二三年, 而惠王已卒, 襄王又立. 乃實計其時, 梁惠即位之年, 距魯繆即位之年, 止三十零年, 即梁惠卒年, 距魯繆卒年, 亦不過四十零年. 然而孟子已老, 本文有‘王曰叟', 是也, 則受業子思, 或未可盡非者與." 【《左傳》趙叟註, 尊老之稱. 〈曲禮〉, 六十曰老】
○모기령이 말하기를(毛奇齡曰): "사기와 한서(《史記》《漢書》)에 오히려(猶) 근거가 부족하고(不足據), 하물며(況) 삼천지라면(《三遷》諸志, 則) 후인이(後人) 꾸며내 만든 것이니(撰造), 또한(又) 어찌(安) 믿을 수 있는가(可信)? 내가(予) 맹자의 본문으로(以《孟子》本文) 계산해 보니(計之), 양혜왕 30년에(梁惠王三十年), 제나라가(齊) 태자 신을 포로로 잡았다면(虜太子申, 則) 맹자가(孟子) 양나라에서 유세한 것은(游梁), 마땅히(自當) 재위 30년 이후다(在三十年之後). 그러나(然) 맹자가(孟子) 양나라에 머문 것이(居梁) 2~3년에 미치지 못했는데(不及二三年, 而) 혜왕이 이미 죽고(惠王已卒), 양왕이(襄王) 또한(又) 즉위했다(立). 바로(乃) 실제(實) 그 시기를 계산하면(計其時), 양혜왕이(梁惠) 즉위한 해가(即位之年), 노목공이 즉위한 해와의 거리가(距魯繆即位之年), 30년에 머물고(止三十零年), 곧(即) 양혜왕이(梁惠) 죽은 해는(卒年), 노목공이(魯繆) 죽은 해와(卒年) 거리가(距), 또한(亦) 40년에 불과하다(不過四十零年). 그러나(然而) 맹자가(孟子) 이미 늙어서(已老), 본문에(本文) ‘왕이 노인이라고 말해다(王曰叟)'가 있으니(有), 이것이라면(是也, 則) 자사에게 가르침 받은 것이(受業子思), 혹(或) 전부 틀린 것이라(盡非者) 하지 않을 수도 있는가(未可與)." 【《左傳》趙叟註, 尊老之稱. 〈曲禮〉, 六十曰老】
○鏞案 當從《史記》.
○鏞案 마땅히(當) 사기를 따라야 한다(從《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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