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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중용장구(中庸章句)

[중용장구(中庸章句) 20-e] 호학과 호인과 호용 / 구경장(애공장)(九經章(哀公章)) / 호학근호지 역행근호인 지치근호용(好學近乎知 力行近乎仁 知恥近乎勇)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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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용을 알면 자신을 다스릴 수 있다

20.9 子曰 好學近乎知, 力行近乎仁, 知恥近乎勇. (자왈 호학근호지 역행근호인 지치근호용)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지에 가깝고, 실천에 힘쓰는 것은 인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에 가깝다.

 

‘子曰’二字, 衍文.

자왈(子曰) 두 글자는, 연문이다. 

 

此言未及乎達德而求以入德之事. 

이것은 달덕에 미치지 못해서 덕에 들어가는 일(入德之事)을 구하는 것을 말한다.

 

通上文三知爲知, 三行爲仁, 則此三近者, 勇之次也. 

앞 글의 세 가지 앎(生知, 學知, 困知)는 지혜가 되고, 세 가지 행함(安行, 利行. 勉行)은 인이 되는 것을 통해서, 이 세 가지 가까움은, 용(勇)의 순서가 된다. 

 

呂氏曰: “愚者自是而不求, 自私者徇人欲而忘返, 懦者甘爲人下而不辭. 

여씨가 말하기를: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옳다고 여겨서(自是) <남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 사사로운(自私) 사람은 인욕을 따르고 돌아오기를 잊고, 나약한 사람은 남의 아래가 되는 것을 사양하지 않고 달갑게 여긴다(甘).

 

故好學非知, 然足以破愚; 力行非仁, 然足以忘私; 知恥非勇, 然足以起懦.”

그러므로 배움을 좋아하는 것이 지는 아니지만(非知), 어리석음을 깨뜨리기 충분하고; 실천하는 데 힘쓰는 것이 인은 아니지만, 사사로움을 잊는 데 충분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용은 아니지만, 나약한 <사람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近思錄』曰: “以其好學之心, 假之以年, 則不日而化矣. 後人不達, 以謂聖本生知, 非學可至, 而爲學之道遂失.”

근사록에 이르기를: 그의 배움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몇 년의 <수명을> 연장했더라면, 며칠이 안되어 화했을 것이다. 후인이 이것을 통달하지(깨닫지) 못하고, 성인은 본래 나면서 아는 것이고, 배워서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학문하는 도를 마침내 잃었다고 했다. 

 

 

20.10 知斯三者, 則知所以修身; 知所以修身, 則知所以治人; 知所以治人, 則知所以治天下國家矣.

(지사삼자 즉지소이수신 지소이수신 즉지소이치인 지소이치인 즉지소이치천하국가의)

이 셋을 아는 사람은, 수신의 방법을 알고; 수신의 방법을 알면, 남 다스리는 법을 알고, 남 다스리는 법을 알면, 천하와 나라, 집안 다스리는 법을 안다.

 

斯三者, 指三近而言. 人者, 對己之稱. 天下國家, 則盡乎人矣. 

이 세 가지는, 세 가지 가까움(好學, 力行, 知恥)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사람(人)이란, 자기와 대비되는 것을 칭한다. 천하와 나라, 집안은 다른 사람을 다 든 것이다(盡).

 

言此以結上文修身之意, 下文九經之端也.

이것을 말해서(言此) 앞 글의 수신의 뜻을 매듭짓고, 다음 글 구경의 단서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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